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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17.09.30~10.06)

[블라디보스톡] Russia 1. Vladivostok, One way.

Russia Day1.

Vladivostok,

 One way.  

 

단군 이래 최대 휴일이라는 2017년 추석을 맞이하여 러시아에 다녀왔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랬다고 모스크바에 가면 좋았겠지만,

이번 루트는 블라디보스톡 - ((시베리아 횡단열차)) - 이르쿠츠크 - 리스트비얀카 - 이르쿠츠크이다.

그래서 진짜 블라디보스톡 원웨이임.

 

(베를린 속편 내주라)

 

애초에 계획부터 초점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바이칼호수에 맞춰져있었기 때문에 블라디보스톡은 그저 지나가는 도시였다. 그리고, 블라디보스톡은... 그냥 지나가면 돼요.

한국으로 빗대자면 인천공항 - 월미도 - ((끝없이 달리는 무궁화호)) - 가평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바이칼 호수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1. 언제나 그렇듯, 여행은 즉흥인걸로.

이제 나 스스로에게 미안할 정도로 즉흥적으로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추석도 그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셋이 여행이나 다녀오자, 싶어서 조금 늦게 그리고 매우 비싸게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아주 충동적으로.

그래서 시베리아 항공과 악명 높기로는 아에로플로트를 뛰어넘는 오로라 항공을 타고 다녀왔다.

셋 중 하나는 명절 출근이 있어 따로 대만을 가고 결국 둘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지, 우리가 이렇게 안 맞는 여행메이트인 것을...

 

환전

매번 여행가기 전이 가장 바쁘다.

몽골 가기 전에는 야근이 있었고, 경주 가기 전에는 숙취가 있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어차피 일하다 가는 도비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즐기기로 했다.

약간 준비 안된 채로 떠나면 조금 두근 두근한 마음이 든다.

특히 입국 심사할 때, 다시 돌려보낼까봐 조마조마하다. 평탄한 인생에 최고의 스릴.

 

여행 가기 전에 회사 동료분이 항공기 뭐 타고 가냐고 물어봐서 아에로플로트라고 대답했는데, 알고보니까 시베리아 항공이었다. 그래서 다음날에 '알고보니 갈 때 시베리아 항공을 타고오고, 돌아올 때 아에로플로트에요' 하고 정정했는데, 돌아올 때 확인해보니까 아에로플로트인 척 하는 오로라항공이었다. 나의 무방비한 매력에 치얼쓰.

 

 

이번에도 공항에 가서 돈을 뽑고, 블라디보스톡에서 환전할 생각이었다.

(이미 동행인 고찡이 환전을 미리 해놨고, 블보나 한국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나는 가서 환전하라고 했길래 잽싸게 알겠다고 했다. 환전할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이 계획이 조금은 위험한게, 러시아나 한국이나 토요일/일요일에는 은행을 열지 않는다.

일요일에 도착할 경우 환전할만한 은행을 찾기 어렵다. (나도 어렵사리 찾았음.)

 

여행자보험

몽골에 갈 때 여행자보험은 Standard로 들었다.

어차피 보장되어 있는 현지 가이드가 안내해줄테니까, 울란바타르의 소매치기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러시아는 들리는 괴담이 너무 많았고, 횡단 열차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기 때문에 가장 높은 등급으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돈지랄.

러시아 사람들처럼(화가 난 것처럼 보이지만) 순한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특별히 스킨헤드를 만난 적도 없고(본 빡빡이라고는 티벳 불교를 공부하는 Monk님...)

This is England에 나오는 겁없는 10대들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들어놓은 여행자 보험에 비해 너무도 안전하게 다녔다.

 

 

2. 시베리아 항공: 힘내라, 시베리아 도비들...

 

나도 놀고, 너도 놀고, 다들 노는데 항공사는 못 논다.

비행기에 일단 타면 내 명줄이 승무원들에게 달렸기 때문에 제대로 까불지 못하는 진상들이 많은데, 지상대는 정말 진상 천국이다.

시베리아 항공에서는 러시아 진상을 봤다.

세상의 모든 일하는 도비를 지지하는 마음으로 지상대 직원에 감정이입해서 러시아 진상이라고 부르는 것도 있지만, 앞에 있는 한국 사람 둘이랑 신나게 떠드는게 시끄러워서 너무 밉상이었다.

 

시베리아 항공은 이코노미 베이직과 이코노미 플렉스로 등급이 나뉘어져 있는데, 이코노미 베이직의 경우 위탁 수하물이 허용되지 않는다. 위탁 수하물을 보내야한다면 따로 60,000원 정도를 추가해야 한다. (미리 신청하면 삼만원 정도라고 하는데, 미리 신청하는데가 어딘지 도저히 찾을수가 없다. 이런 식으로 삼만원을 버는거다. 러시아는 이런식으로 돈을 번다.) 기내용 수하물은 10kg 이하, 55×40×20cm 이하 가방이다.

 

암튼, 이 러시아 아저씨는 캐리어하나에 누가봐도 기내용 수하물이 될 수 없는 장난감 박스를 들고 있었으니 당연히 시베리아 항공 지상대 직원들은 그걸 기내에 들여보내줄 수가 없다.

대충 둘 사이의 대화가 어땠는지는 러시아어라서 모르지만, 위탁 수하물 하나 추가하려고 결제하러 그쪽 카운터로 갔을 때, 러시아 아저씨가 '시발! 시발!' 이라고 했다. 그 전의 러시아어 대화부터 지상대 직원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러시아어에서 'spasibo'는 감사하다는 뜻이고, -sibo는 축복의 뜻을 갖는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러시아 아저씨가 지상대 직원을 축복하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으니 한국어 욕이 맞는 것 같다.

추석에 일하는 도비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추석에 일하는 도비는 결국 아저씨의 짐을 기내 수하물로 허용해주고 말았다.

욕먹으면서 일하는 도비들 힘내쇼...

양말이라도 한 켤레 주고 싶었다.

그렇게 비행기에 탄 막무가내 러시아 인이 앞자리에서 처음만난 한국인이랑 둘이 신나게 떠드는데 예뻐 보이겠냐구요.

 

(진상이고 뭐고 돈 쓴 티 내려면 이런 건 찍어줘야 됨.)

여러분, 제가 돈을 씁니다, 여기에!!!!!!!!

이게 오십만원 짜리에요!!!!!!!!!!!

 

 

 

S7 항공기 색은 기깔나게 예쁘지만(그래봤자 에어버스) 진짜 장점은 따로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을 가든, 러시아를 가든 북한을 지나갈 수 없다.

폭탄을 잔뜩 싣고 선전포고차 던지러가는 전투기가 아닌 이상, 대한민국 여객기가 북한을 지나갈 수가 없다.

그런데 러시아 국적기는 가능.

그래서 블라디보스톡까지의 비행시간이 30분 정도가 단축된다고 한다.

(그래도 북한 땅은 당연히 안보인다.) 

러시아를 일본 드나들 듯 드나들 수 있다. (둘 다 안 드나들거지만)

아주 작은 비행기에서 30분 절약이 매우 크다.

30분이 절약된 대신에 기내식은 아주 박하다.

말도 안되는 노맛 샌드위치를 주는데, 스프라이트가 없다고 했다.

목이 메어서 두 명 정도 기절하면 북한에다 대충 떨어뜨리고 가면 되니까 그런가보다.

입석(혹은 자유석)으로 몇 명 받아서 빈자리 채우면 오버부킹도 문제 없음!

암튼 그 정도로 맛없다.

 

3. 늦은 밤의 블라디보스톡

 

다행히 비행 도중 북조선으로 낙오되는 사람 없이 모두 블라디보스톡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따로 입국 신고서 작성은 필요없다.

입국 신고를 할 때, 여권을 보여주면 그 때 입국허가서를 적어준다.

진정 멋있는게, 내 이름을 키릴자로 적어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키릴로 더 쓰기 힘든 이름으로 태어나는 건데.

저 입국허가서는 나중에 출국할 때 꼭 필요하기 때문에 꼭 여권에 넣어서 잘 보관해야한다.

다른데다 두면 종이가 너무 얇아서 껌씹다가 껌 뱉어서 쓰레기통에 버리게 될 것 같다.

매우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던게, 진짠지 아닌지 모르는 주소를 적으면서 승무원 볼펜을 훔치느니

그냥 알아서 도장찍어주고 머무르는 숙박업소에서 여권의 하드카피를 보관하는게 훨씬 낫다.

 

러시아 공항이 외국인, 특히 성격 급한 한국인들한테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다가 뽀찌 받고 입국시켜준다거나, 그냥 하염없이 기다리다 늙게 만들거나 등등 장난치는 걸로 너무나도 악명 높아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입국심사는 금방 끝났다.

 

그래도 도착시간이 저녁이라서 날이 저물었다.

우리가 예약한 Teplo Hotel은 107번 사설 버스를 타고 삼십분 조금 넘게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버스 타는 곳을 찾으려고 공항 Information으로 갔다.

러시아에 갈 때는 기본적으로 키릴을 읽을 줄은 아는 상태로 가는게 좋은게 Информация이 Information이란 뜻인데, 영어 알파벳이랑 놀라울 정도로 1:1 매칭이 잘 된다.

1:1매칭이 아니라도 대충 읽고 유추할 정도까지는 된다. 

이 외에도 KAΦE[Cafe]라던가, OKEAN(Ocean), AEPOΠOPT(Airport)이라던가 대충 유추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블라디보스톡 아에로뽀르트, 외관만 그럴싸하다. 절대 Vladivostok Airport라고 써주진 않는다.)

 

나랑 고찡은 적어도 키릴은 잘 외우고 갔다. 말을 못해서 문제지.

Information에 가서 Vladivostok Railway Station으로 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냐고 물어보니까,

거기까지는 기차로 못가니, 맞은편으로 보이는 입구로 나가서 107번 버스를 타라고 한다.

모로 가든, 원하는 정보는 얻었으니 됐다.

 

다행히 나가자마자 손님을 받고 있는 107번 버스가 있다.

사설 버스이기 때문에 버스가 다 차기 전에는 출발하지 않는다.

버스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고, 밴이나 봉고같은 거다.

 

기억에는, 인당 120루블, 캐리어당 50루블 정도 받았던 것 같다.

대부분의 대중교통이 짐 값도 함께 받는다. 짐이랑 같이 서서가도 짐 값을 받는다.

트램도 마찬가지였다.

 

암튼 돈 잘 내고, 잘 구겨져서 가면 된다. (선불이든, 후불이든 상관없이 기사님한테 내면 됨.)

 

기사님이 매우 유쾌하신 분이라서, 블보 공항을 찍고 셀카를 찍는데도 매우 즐거워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땐 러시아 사람들은 다 이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치만, 아니... 전혀 아니...

 

차는 견고하고 외부에 비해서 내부가 좁은 걸 보니 사고나도 크게 다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신나게 달리더라.

차 외관에 비해 승차감은 너무 구렸다. 차 때문인지 도로 때문인지 모르겠는데, 도로는 평범한 아스팔트였다.

여기도 몽골이랑 비슷하게, 우리나라랑 똑같이 차들이 우측통행을 하는데 운전석은 오른쪽도 있고 왼쪽도 있다.

중고차를 수입해와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몽골이랑 비슷하게 교통법규 뻐뀨.

그냥 겁나 달리고, 겁나 끼어들고.


그렇게 열심히 달리다보면 Vladivostok Railway Station에 도착한다.

절대 Vladivostok Railway Station이라고 영어로 써주지는 않지만, 그냥 익숙해지는게 좋다.

중간에 내리는 사람이 많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었던게, 여기가 종점이고 모든 한국인이 여기서 내린다.

이 근처가 블라디보스톡의 홍대라는 아르바트 거리와, 해양공원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

 

예약했던 테플로 호텔도 여기서 멀지 않았다.

뒤를 돌아 레닌 동상을 바라보며 올라가서 왼쪽으로 쭉 올라가면 되는데,

나랑 고찡은 길을 잘 몰라서 좀 돌아갔다. 그래봤자 10분정도 걸렸던 것 같다.

길에서 잠자는 러시아 아저씨 말고는 어두울 때 도착해도 무서운 일은 없었다.

이게 그 레닌 동상이다. 약간 그거 같다.

누군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손꾸락을 들어 기차역을 가리켜라. (겪은 바 국제공항보다 기차역이 좋음.)

 

 

테플로 호텔은 영어를 능숙하게 하는 직원이 있었다.

우리랑 같이 버스를 타고 왔던 한국인 둘이 이미 와있었다.

그들에게 어떻게 예약했냐고 물었고, 그 둘이 부킹닷컴에서 했다고 했다.

호텔 들어올 때 손잡이 옆에도 Booking.com 마크가 있었다.

 

우리한테도 어떻게 예약했냐고 하길래 Booking.com에서 했다고 했다.

알고보니 hotels.com이었다.

마케팅을 위해 데이터 수집을 하는 모양인데, 하나의 신뢰할 수 없는 data point가 되었다.

데이터마이닝을 배운 산업공학도가 이러면 안되는데 미안.

근데 Sample size가 커지면 난 아무것도 아니게 될거야. 그러니까 더 노력하세요.

 

방은 살짝 춥고 좁은데, 아늑하다.

알고보니 추운 것도 창문을 열어놔서 그런 거였다.

다만 일층이라는게 조금 불안했는데, 동네 자체가 관광지라서 그런지 안전한 편이다.

24인치 캐리어는 다 펴기도 힘들 정도로 방에 여유공간은 없는데 침대는 넓은 편이다.

특히 저런 샹들리에.

이런 호스텔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내고자 저런 인테리어를 할 때마다 약간 애잔한 친근함이 든다.

따뜻한 물 잘 나오고, 배수 잘되고, 채광 잘되는 것을 보니 좋은 자취방의 첫번째 조건을 갖췄다.

날이 너무 어두워진데다가 호텔로 오는 길에 발견한 '길에서 누워서 자는 뚱뚱한 러시아 아저씨'때문에 지영이가 잔뜩 쫄아서 저녁은 생략하기로 했다.

 


 

(블라디보스톡 1편/횡단열차 1편/이르쿠츠크 1편/바이칼호수 1편)을 쓰려고 했는데, 분량 조절에 실패함.

이번 화 요약: 시베리아 항공타고 늦은시간 블라디보스톡, 미리 예약해둔 호텔 도착해서, 잔뜩 쫄아서 잠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