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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17.09.30~10.06)

[리스트비얀카]Russia 6. 바이칼의 도시, 리스트비얀카 2

   Russia 6.

바이칼의 도시,

리스트비얀카 2

 

지난번 과한 혼술로 만두사진을 거꾸로 올리더니, 과한 업무에 1일 1술 하다보니 기억이 희미해져갈 즈음 마지막편을 올린다.

오늘은 혼술 대신 토르 라그나로크를 봤다.

헤임달이 열어주는 무지개다리가 아니라, 자꾸 아빠 만나러 무지개다리 건널 뻔 하는 토르 이야기.

머리깎고 잘생겨진 햄식이 덕분에 러시아 6편을 씁니다. 잘생긴 거 최고야.

 

1. 바이칼 모험

 

전날 기분이 상한 채 어색함 속에서 잠들었던 것과는 달리, 아침이 되니까 기분이 거짓말처럼 좋아졌다.

이유는 마야크 호텔의 조식 뷔페가 훌륭해서.

러시아는 대체로 호텔 조식이 훌륭해서 아침부터 과식을 하게된다.

물론 점심도 과식, 저녁도 과식한다. 하하.

 

조식은 분명 훌륭했는데, 사진이랍시고 찍어놓은게 이깟것들 뿐이다.

맛집 블로거도 아닌데 뭐 어땨용.

 

 

 

세상 맛있는 거 다 놔두고, 수박씨가 커서 찍었음.

수박은 그냥 수박인데 수박씨 스게~~~스고이~~~

 

 

photo by 고찡

다행히 맛있는 건 고찡이 잘 찍어놨다.

 

예약해 둔 보트 투어는 13시이고, 12시 반까지 가겠다고 했으니 아침 먹고 시간이 넉넉히 남았다.

그래서 고찡에게 (반쯤 강제로) 약속한 대로 바이칼 산책을 떠났다.

아침에 살짝 비가 내려서 사실은 산책이 아니라 모험에 가까움.

 

(찍고보니 넘나 멋짐. 털을 부풀려 상대를 위협하는 족제비 아니면, 새벽 상하차 알바의 퇴근 후 낮술 정도의 힙함.)

 

모든 나라가 한국과 일본을 이길 순 없지만 뭔가 '잘 갖춰진' 것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잘 보존해놓은' 것에 초점을 맞춰야 여행이 편한 것 같다.

그러나 바이칼 호수변은 잘 갖춰지지도 잘 보존해놓지도 않았다.

이 호수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참 좋았겠지만, 쓸데없는 구조물이 조금 많은 편이다.

호수변으로 내려갈 때 정말 말도 안되는 계단을 여러개 봤는데, 그 계단을 내려가니 말도 안되는 콘크리트+철근 덩어리가 있다.

예쁘게 차려입고 호수변을 산책해야지라고 생각하면 30m쯤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족도가 높은 모험을 했는데, 그건 바로 벤치코트와 부츠 그리고 입수 덕분

 

농담처럼 러시아에 가려고 벤치코트를 산 것이 아니라 벤치 코트를 살 좋은 구실을 만들기 위해 러시아에 간다고 말했는데, 반쯤은 진심이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

(내려가는 길 하나하나가 다 말도 안된다.)

 

(그나마 양호한 계단, 진짜 내려가는게 말도 안되는 계단도 있었음.)

(그나마 양호한 계단과 멋진 벤치코트, 멋진 러시아 낙서)

 

그래도 이 모험은 고찡과 나, 둘 모두를 만족시켰는데, 일단 끝없이 펼쳐진 멋진 풍경과 철근+콘크리트+파도를 넘는 모험이 날 즐겁게 했고, 왠지 아련한 듯 멋있어 보여서 사진이 잘 나오는 풍경이 고찡을 만족시켰다. 아마도.

비가 진 오전 바이칼 수변의 산책은 약간 흐려서 더 멋진데, 그 멋짐에 멋짐을 더해주는게 이런 간이 나루터이다.

파도치면 살짝 흔들려서 모험심을 자극한다.

 

나루터가 워낙 짧아서 끝까지 가더라도 그렇게까지 깊진 않은데, 그래도 바닥이 비춰지는 건 신기하다.

서해 흙탕물을 보고 자란 인처너는 바닥이 보이는 투명함이 너무 신기함.

 

 

(덩실덩실 아님. 아무튼 아님)

 

(을왕리 아님. 경포대 아님. 바이칼 호수임.)

 

눈으로 보이는 풍경도 풍경이지만, 귀로 들리는 파도 소리가 굉장히 평온하다.

이제 곧 출근해야한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주는 파도소리였음.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들어야지, 하고 영상으로 찍어놨는데 이거 들을 정도의 스트레스면 갤러리 천천히 찾아볼 정신 없고요.

 

 

 

(싸이월드 프로필ST. 감성사진 게또)

 

 

사진을 많이 찍기도 찍었지만 눈 앞에 바이칼은 카메라에는 도저히 담기지 않는다.

사진은 그냥 나의 흔적을 남기기 위함.

 

그 와중에 이렇게 멋진 바이칼호수에 와서 춥다고 발 한번도 안 담궈볼 수가 없어서 발을 담궜다.

치마 입고 나가서 스타킹 신었지만 남들 안보는 사이에 열심히 꾸물꾸물 벗어서 입수했다.

발가락 두고 나올뻔...

 

 

조금만 더 정신 나갔으면 목까지 들어가는 건데, 다행히 목숨을 일지 않을 정도의 정신머리가 있었다. 

 

 

 

2. 동물원, 네가 왜 거기서 나와?

해변가를 쭉 따라가는 동안 나야 워낙에 따뜻하게 잘 입었지만, 고찡이 입고 온 패딩이 얇기도 했고 벤시몽 신발같은 걸 신고 있어서 해변으로 돌아가기에는 체력이 너무 떨어질 것 같아서 위쪽으로 올라와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이것 저것 보면서 마트도 들리고, 구경하고 싶은게 있으면 보기도 하려고.

그런데 돌연 동물원이 나온다. 동물원이요...? 여기서요...?

동물원이 나올 사이즈도 아니고, 장소도 아니고.

너무나도 신기해서 들어갔는데, 인당 200루블이다. 한화로 4,000원 정도에 보트 타기까지 시간도 많이 남아서 들어갔는데, 누가봐도 어디서 밀렵해온 것 같은.

곰도 있고, 사슴도 있고, 밍크 코트할 때 그 밍크도 깔별로 있고, 너구리, 양, 염소, 사슴, 여우도 있다.

동물마다 활동 공간은 좁은 편이고, 생활 환경이 좋지 않아서 동물 보호단체에서 나오면 1의 확률로 고소당할 것 같다.

곰돌이

 

뭘봐, 내가 사슴이라고 무시하냐.

 

여우

 

밍크(#FFFFF)

밍크(#D5D5D5)

밍크(#00000)

 

너구리.

 

 

...여...염소님.

 

짱센 염소.

 

경악스럽게 놀랐던 건 양이랑 염소 무리가 건초 더미 사이에서 밥을 먹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지나가려는데, 유난히 덩치가 큰 애가 있어서 자세히 봤던 늑대였다.

왜 기독교 성경 이사야서에 보면, 늑대와 어린 양이 함께 풀을 뜯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며 뱀이 흙을 먹고 살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에서나 서로 해치고 죽이는 일이 없으리라." 야훼의 말씀이시다. [이사야 65:25] 라고 되어있는데 그 거룩한 산이 여기에요. 이르쿠츠크에 있어요.

 

 

 

늑대가 순한 대형 댕댕이처럼 생겨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조금 있다가 곰 축사를 청소한다고 곰을 여기에 풀어놨다.

곰은 하나도 안 순해서 뛰어다니고, 댕댕이는 쫄아서 가만 있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서 도베르만과 말라뮤트를 같이 키우는 집이 나왔었는데, 거기서 잔뜩 쫄아있는 도베르만처럼 곰이 근처에 오니까 늑대가 숨도 안쉬고 눈도 안마주치고 가만히 있었다. 스스로를 양이나 염소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이.

염소랑 양이랑 늑대랑 곰돌이랑 같이 풀어놓은 엉망진창 밀렵원.

바이칼 호수랑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랑 고찡밖에 없었고 나중에 나갈 때는 영어로 친절하게 인사해줬다.

그...그래요.

 

3. SHARK호와 네르파

 

보트를 타러 가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아서 호텔 로비에서 차를 마셨다. 이미 체크아웃도 끝났고, 로비에 짐만 맡겨놓은 상태였는데 호텔 화장실도 쓰고 차도 마시는 진상 여기 있어용.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또 다시 슈퍼에 들러서 엄청 큰 맥주를 샀다.

러시아에서 인기있는 러시아 국산 맥주 발티카를 샀다.

이르쿠츠크에서 8.1%의 아픈 기억을 남겨준 발티카를 홍언니에게 주려고 샀찡. 우리는 쪼렙이니까 발티카 8, 9말고,  발티카3이랑 발티카7로!

한국에도 수입이 된다고 하는데, 모든 시리즈가 다 되진 않고 스트롱 비어는 아마 안되는 것 같다.

 

 

잠깐 Fish Market 쪽에 갔다 오기도 했는데, 친언니가 차를 사오라길래 차랑 차에 타 두 스푼 넣어먹으면 맛있다는 뭔가를 샀는데, 이것도 하바롭스크 공항 엑스레이 검사대에 두고옴. 미안... 형부꺼랑 언니꺼는 이제 없어...

아침 일찍부터 추운데 돌아다녀서 몸이 차가워져있던 터라 호텔로비에서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쉬니까 시간이 훌쩍 갔다.

12시 30분이 돼서 보트 투어를 하기로 한 인포센터로 갔다.

원래 8명 이상이 모이면, 영어를 잘하는 예쁜 언니가 가이드를 해준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섯명 밖에 모이지 않아서 가이드를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200루블 정도를 더 지불하면 가이드를 해준다고 한다. 서양인 아저씨 두명이랑 나랑 고찡, 그리고 한국인 여자분 한 분이 있었는데 추가 금액 없이 가이드 없이 보트 투어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가이드가 없는 대신 볼만한 책자가 있냐고 물어보니 그것도 없다고 하길래, 보트 투어에 대한 설명만 카메라로 찍어놓고, 보트에 탑승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올라탈 샤크호.

담수에 무슨 상어냐 하겠지만, 실제 철갑상어가 산다.

(출발)

 

처음 30분 정도는 수변을 따라서 가는데, 바이칼 국립공원 쪽이라고 한다. 바이칼 국립공원이 있는 걸 이걸 보고서야 알았다. 이 부근을 보는 동안에는 수평선 너머보다는 육지 쪽 풍경을 보는 게 더 멋있다. 바이칼 호수가 매우 투명해서 40m까지는 형형색색의 돌과 바위가 보인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고, 잘 집중해서 물 속을 보면 바닥면이 약간 보이는 정도이다. 아이폰 카메라로는 안 담길 정도. 그리고 나서 조금 더 육지에서 떨어져서 가는데, 겁나 춥다. 아침에 산책할 때도 살짝 추웠는데, 배 위에서는 콧물이 줄줄 흐른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안녕.

한참을 가다가 한국인 여성분 옆에 서있는데, 그 분이 멀리를 가리키면서 네르파가 아니냐고 물어본다. 육지에서도 네르파를 보고 싶어서 웬만한 바위는 다 네르파로 착각했던 터라, 이번에도 아니겠지 싶어서 찡그리고 보는데 바위가 헤엄을 친다. 네르파였어...! 얼굴과 허리만 봤지만 그렇게 보기 어렵다는 네르파를 봤다. 담수호의 유일한 귀요미 물범! 가까이서 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본 게 어디야. 바이칼 호수 수평선을 바라보면, 햇빛이 비치는 부분이 반짝반짝 빛난다.

 

 

 

파노라마가 약간 거지같이 찍혀서 잘 안보이지만, 지평선 중앙이 반짝반짝 빛나는게 보석같아서 왜 바이칼 호를 지구의 눈이라고 하는지 이해했다. 정말 질리지 않는 풍경. 수평선은 정말 올곧게 있는데, 추워서 손이 떨렸다 치자. 손이 떨리면 중력센서로 보정을 해줘야지, 아이폰이 잘못했네.

이 질리지 않은 풍경을 보면서 질리도록 콧물이 나와서 훌쩍이고 있는데, 선장 아저씨가 선실로 들어와서 있어도 된다고 해줬다.

친절한 아저씨. 들어가니까 말은 안통하지만 손짓으로 이것저것 이야기해주면서 배 조정도 한번 하게해줬다.

딱히 구조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육지에서도 많이 떨어져있어서 우리한테 맡겨도 위험할 게 없어 보이긴 한다.

내가 언제 이런 배 키를 잡아보겠어, 해서 고맙다고 하고 냉큼 잡으니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신다.

러시아에서 본 사람 중 또 드물게 친절하고 적극적인 아저씨.

동양인 같은 내면을 가진 이 아저씨의 사진 실력은 전형적인 외국인 남자.

 

실례지만 뭘 찍으신 거죠....?

내 사진을 보더니, 고찡이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말도 없이 나에게 카메라를 맡긴다. 암요, 그래야죠.

 

 

고찡 찍을 때 불 켜고, 나 찍을 때 불 끈거 아님.

사진은 못찍지만 친절한 아저씨가 망원경으로 저 멀리도 구경하게 해주고, 따뜻한 히터가 나오는 자리도 마련해줬다.

뭔가 프로페셔널해보이는 뒷모습. 역시 사람은 기술을 배워야해.

사진 기술이 다 무슨 소용이람. 그치만 나 사진 정말 잘 찍음. 아이폰 사진 콘테스트 나가도 되겠다, 하하.

 

 

순식간에 한시간이 갔고, 아쉽게도 배에서 내릴 시간이 됐다.

같이 탄 한국인 여자분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알혼섬에 갔다 오셨고 리스트비얀카랑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알혼섬이 아름답다고 한다. 다만 숙소가 좀 후지다고. 나는 알혼섬이 가고싶었고, 그 분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보고 싶어서 간단히 이런 이야기 나누고 헤어졌다. 배 앞에서 친절하게 잘해준 선장님이랑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셔서 사진을 찍어드리고, 우리도 사진을 한 장 남겼다. 역시, 사진은 한국인이...

이제까지의 어떤 입장료와 어떤 어트랙션보다 비싼 값이긴 했는데,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다시 러시아를 오게 된다면, 그땐 알혼섬에도 가고, 3시간 짜리 보트투어도 해야지.

 

 

(고찡의 사전 요청으로 고찡의 모든 사진은 모두 블러 처리합니다.)

4. 오물을 맛있게 먹는 방법

 

배에서 내려서 고찡과 같이 FIsh Market에 갔다. 두 군데가 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에 있는 작은 곳으로 갔다.

배 타기 전에 잠깐 들렀던 Fish Market에 또 간 이유는 생선 먹으러! 오믈 먹으러!

숙소에서 고찡이랑 아침에 어포를 뜯어먹다가 아빠랑 영상통화를 했는데, 아빠가 어포가 궁금했는지 사오라고 하셨다.

 

(아침부터 먹으려고 꺼내놓은 간식들.

실제로 먹은 건 알룐카 초콜릿 조금이랑 어포)

 

이걸 입에 물고 아빠랑 통화하니까 아빠가 어포를 사오라고 했다.

영상통화 할 때 아빠 핸드폰이 이상한지, 내꺼가 이상한지 나는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데, 아빠는 내 목소리가 안들려서 아주 일방적으로 의사소통 당했기 때문에 어포는 사가야만 했다. 거절할 마음도 없었지만, 거절해봤자 응, 안들려~

그래도 아빠 덕분에 간 Fish Market은 볼만했다. 그래봤자 한 군데 열려있긴 했는데, 여기 아주머니도 너무 친절하셨다.

배타기 전에 아빠에게 줄 어포를 3마리를 사는데, 사는 동안 옆에 러시아 아주머니가 구운 오믈을 사셨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쳐다봤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줄까?' 하고 물어보시길래 고개를 저었는데, 배타고 있는 동안 계속 생각나서 고찡에게 먹으러 가자고 졸랐다. 생각해보니까 계획적인 너한테 참 극한 여행이었겠다, 싶다. 그래도 잘 먹었잖아, 우리.

 

이렇게 말린 생선을 크기별로 팔고 있다.

 

아빠 주려고 왼쪽에 있는 것 세개를 골랐는데 100루블 정도였던 걸로 기억함.

종이에 꼼꼼히 싸서 노란 비닐에 담아주신다.

 


소듕한 생선을 들고 사진을 찍었지만, 사실은 조금더 야만적으로 옆에 놓고 뜯어먹었다.

옆쪽에 생선을 뜯어먹을만한 공간은 있는데, 젓가락이나 포크가 없어서 콧물 줄줄 흘리면서 생선을 뜯어먹는데, 진짜 개맛있음.

고등어스럽기도 하고, 꽁치스럽기도 하고. 민물생선 많이 안먹어봤지만 민물생선의 느낌이 아니야. 마시쩡.

넘나 즐거워하면서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앞에 있는 가게에 들어가더니 따뜻한 차를 두컵 가지고 오셔서 나와 고찡에게 건내주셨다.

물도 돈주고 사먹는 나라에서 차까지 주다니 감동쓰.

추운 날 길에서 사먹는 군밤이랑 붕어빵이 맛있는 것처럼, 그냥 길가다 먹고 싶어서 먹은 이 오물이 제일 맛있다.

먹을 때 처지가 거지꼴에 가까울 수록 음식은 맛있는 것 같다.

 

5. Captain 자본주의

 

이제 오물도 먹었고, 어딜 갈까 하다가 근처에 황금색으로 반짝반짝한 성 니콜라스 성당이 있다길래 거기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은 배타기 전에 고찡이랑 여기 얼른 들렀다오자 해서 걸어서 갔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마야크 호텔에서 걸어서 꽤 먼 거리라서, 시간을 좀 넉넉하게 잡고 가야한다.

생선먹고 돌아와서 마야크 호텔 앞에서 댕댕이를 한마리 만났다.

원래 이곳이나 몽골이나, 길에서 만난 멍멍이는 만지면 안된다.

광견병 접종도 안 된 애들일 확률이 크고, 애들이 무는 버릇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날 수 있다.

 

예전에 거래처에 갔을 때 사장님이 키우는 큰 댕댕이가 있었는데, 외부 사람이 오면 엄청 크게 짖었다.

짖는 모습은 사나워보이는데, 짖는 이유는 낯선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있어서 냄새맡고 싶어서 그런 거라길래 일단 한번 냄새를 맡게 해주면 경계를 푼다고 한다. 그래서 이 댕댕이에게도 냄새를 맡게 해줬더니 맘에 드는지 계속 따라온다.

목줄도 있고, 아주 버려진 애는 아니고, 주인이 개의 생활을 존중해준다고 생각하고 동행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손에서 나는 생선 냄새 때문에 따라오나, 가방에 먹을게 있다고 생각해서 따라오나, 하고 적당히 가다보면 그만 두겠지 싶었는데 성당까지 계속 동행했다. 그것도 앞장서서. 그래서 캡틴이라고 부르면서 같이 다녔다.

 

 

굉장히 산만해서 물웅덩이랑 물웅덩이는 다 맛보고 가야하는 캡틴이지만, 꼭 우리보다 앞에 가야하고 우리랑 같이 가야한다.

마치 우리가 어디 가는지 아는 것처럼 앞장 서서 먼저 오라고 뒤 돌아보기도 하고.

꽤 괜찮은 동행을 만난 것 같았다.

고찡보다 나랑 잘 맞고, 나보다 고찡이랑 잘 맞는 그런 느낌.

댕댕아, 우리 잘 맞는 것 같아.

 

빨리 와라 닝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앞에서 사진찍을 때는 또 같이 있어주는게 기특하기도 하고, 성당 안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동안 밖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돌아가볼까, 하니까 다시 따라옴. 너 나 좋아하냐.

사실 성당 내부가 반짝 반짝 예쁘긴 한데, 천주교도 아니고 한바퀴 자세히 둘러보면 끝나길래 댕댕이를 보러 얼른 나왔다.

 

(외부도 내부도 다 예쁘지만, 내부는 사진촬영금지)

 

넘나 기특해서 가는 길에 들른 슈퍼마켓에서 과자랑 어포를 샀다. 너무 짜지 않고 댕댕이 건강에 좋을만한게 없나 찾았는데 그건 없길래 그냥 각자 먹고싶은 거 샀음. 그리고, 사는 김에 아빠 사다줄 러시아산 꼬냑도 한 병 샀다. 부디 아빠가 나 없이 다 먹지 않았길... 같이 먹어요, 아빠.

암튼 똑똑이인게, 세나개에서 댕댕이한테 어떻게 기다려를 가르치는지 배워서 캡틴한테 써먹었는데, 금방 배웠다. 똑또기야, 아주.

 

캡틴과의 이 아름다운 우정도 잠시.

과자랑 어포를 다 먹어버리니, 가버렸다.

처음부터 목적이 그거였니, 아니면 기다려 시킨게 빈정 상했니...?

아니면, 헤어질 때 눈물 날까봐 가차없이 떠난거니...?

이국에서 만난 종족을 뛰어넘은 우정을 상상했건만, 그는 그저 자본주의 캡틴이었다고 합니다.

쟈갸운 댕댕아, 건강해라.

6. 다시 이르쿠츠크로.

 

이제 나의 목적은 다 이뤘으니, 고찡의 야크양말 목적을 채우러 이르쿠츠크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차비도 역시 인당 120루블, 짐당 50루블. 사실 나는 딱히 기념품에 미련도 없고, 고찡과 스타일이 너무 안맞아서 지쳐있던 터라 고찡이 쇼핑하는 동안 나는 카페에서 짐을 모두 갖고 있기로 했다. 여기 였는데, 음식도 가격도 모두 괜찮았다.

 

 

그래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건너편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카페로 들어가서 고찡의 캐리어와 내 캐리어를 잘 보관하고 주문하러 갔다. 메뉴판을 주시는데, 이름도 설명도 모두 러시아어인 메뉴판을 보고 동공지진이 난 채로 멍 때리고 있으니까 아주 차가운 얼굴로 영문 메뉴판을 주셨다. 오랜만이야, 김첨지.

라그만(러시아 국수), 사우어 크림을 찍어먹는 팬케이크, 레몬과 설탕이 들어간 홍차를 시켰다. 물가는 역시나 비싸지 않았고, 어차피 기념품 쇼핑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돈 생각 안하고 막 시켰다. 짐을 많이 가지고 들어가서 혼자 자리차지하고 있는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고, 천천히 먹으면서 홍언니랑 별이, 엄빠에게 엽서를 쓸 생각이었으니까.

 

 

라그만이라는 국수는 고기칼국수 같은 느낌인데 묘하게 맛있다. 몽골과 한국의 그 중간 어디쯤 있는 듯한 느낌. 암튼 서양식같진 않고, 역시나 몽골이나 중국음식 같은 느낌인데 그렇게 고기나 향신료 냄새는 심하지 않다.

그리고 저 팬케익은 감자전이다. 되게 바삭바삭한 감자전이다. 되게 평범한 감자전인데 맛있음.

한참 맛있게 먹고 있는데 고찡이 매우 급하게 들어오더니, 중앙시장에서 야크 양말을 싸게 판다면서 자기가 흥정도 다 해놨다고 나도 빨리가서 사라고 한다. 그래서 고찡 입에 감자전 두어개 넣어주고 라그만 한입 먹게해주고 일어나서 나갔다.

아깝다. 어차피 잃어버릴 양말, 밥이라도 한입 더 먹을걸...

 

이 중앙시장에 있는 사람들은 동양, 북방계처럼 생겼다. 우리나라 북쪽이니 당연한건가. 야크 양말이 300루블 정도인데, 흥정도 잘 되고 고찡이 생각보다 흥정을 잘 해서 200~250루블 정도에 장갑이랑 양말을 샀다. 얼마나 많이 샀냐면, 엄마 아빠 언니 형부 형부조카1, 2, 3, 내꺼, 남자친구꺼 야크양말 한켤레씩이랑 엄마 아빠 장갑을 샀다. 그리고 싹 다 하바롭스크에 두고 왔다. 하하, 인생.

 

양말 사고 안에 슈퍼마켓에 들어가서 회사에 가져갈 초콜릿, 횡단열차에서 맛있게 먹었던 감자스프, 언니에게 가져다 줄 초콜릿을 잔뜩 샀다. 신기한 초콜릿을 발견해서 회사랑 언니 선물로 요걸 삼.

예전에 엄빠가 슈퍼를 해서 웬만한 군것질류에는 일가견이 있는데, 저 뒤쪽에 버블모양 잔뜩 있는 건, 한국에서도 안에 공기 구멍이 송글송글 있는 초콜릿으로 출시된 적이 있고, 캐드버리나 이런 초콜릿류에도 있다. 특별할 건 없는데 맛있음.

 

페퍼민트인데, 페퍼민트가 아니라 페퍼랑 민트임. 네이밍 지렸다. (※사실 칠리랑 민트임)

 

회사에 이 초콜릿을 사갔다.

안에 민트맛/헤이즐넛맛/다크초콜릿맛/칠리맛이 따로 있는 줄 알았는데,

저 모든게 한 가지에서 난다.

이 정도 융합이면 벌써 남북통일이다.

 

 

7. 러시아 공ㅋ항ㅋ장애.

 

열두시 오십분 비행기라서 모든 쇼핑을 끝내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타야지 했다.

이르쿠츠크 아에로쁠로트라는 단어는 외웠고, 한 170~200루블 정도에 쇼부쳐서 가면 바가지 쓰는게 아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Maxi 어플에서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주소를 모르겠다. 번지 수도 잘 안써있다.

화장품 가게 종업원분에게 가서 주소를 찍어달라고 하니 고맙게도 찍어주신다.

어렵사리 주소를 알았는데, 휴대폰 번호 인증을 해야 택시를 부를 수 있다고 한다.

로밍도 안했는데 번호가 있을리가...?

결국 호텔 근처로 가서 호텔에서 택시를 잡아달라고 하기로 했다.

그치만 가는 길에 택시 발견. 고찡에게 탑승하자고 말함.

사실 외국에서 하면 안되는 행동 중 하나가 예약하지 않은 택시를 타는 건데, 그냥 그렇게 나빠보이지도 않고 마음도 별로 급하지 않아서 그냥 타기로 했다. 이쯤 되니 고찡도 반쯤은 체념한 상태로 따라오는 것 같다.

 

다행히 택시 아저씨는 무섭게 달리지만 좋은 분이었고, 공항즈음 도착해서 이리로 갈까? 하고 물어보길래 Da. 라고 대답했다.

누가 봐도 거기가 국내선 공항 같았거든.

근데 국제선이었고... 국제선은 뭐랄까, 조금 더 후진...

국내선이 인천공항이면 국제선은 고속터미널 같은 느낌의...

여기 혹시 쇄국정책 있나요...?

 

 

그렇게 사람을 헷갈리게 만들거면, 하나는 Airport로 하나는 A3PO∏OPT로 써주면 좋으련만 국내고, 국제고 나는 나의 길을 갈테니 네가 알아서 알아보라는거다. 너무 멋있어서 말잇못. 다신 안 올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이 공항이 좋았던 유일한 한가지는, 러시아에서 단 한번도 못갔던 펍을 여기서 갔음.

근데 하프랑 기네스 파는 아이리쉬 펍ㅋ

그래도 그게 어디냐 싶어서 맥주 마심. 두번 마시고 또 마심.

 

 

이게 뭐라고, 고찡이 여기서 기념사진도 찍어줬다.

보통 2시간 전이면 카운터가 열리는데 여기는 거의 한시간 전에 열린 것 같다.

하바롭스크에서 경유하는 시간이 세시간이기 때문에 짐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혹시나 싶어서, 체크인 카운터에서 한번 더 짐을 찾아야하냐고 물어보는데 하바롭스크. 하바롭스크. 하는 말만 되풀이한다.

네... 찾을게요...

 

공항 체크인은 과정이 매우 복잡한데, 공항 건물로 들어올 때 엑스레이 검사대를 한번 지나고, 체크인 카운터로 들어가기 전에 한번, 그리고 게이트 쪽으로 갈 때 한번 더 엑스레이 검사대를 거친다.

 

우리나라 공항과는 달리, 게이트 표시나 탑승 안내가 잘 되지 않기 때문에 귀를 쫑긋 세우고 안내 방송을 듣거나 눈치껏 움직여야 한다.

다행히 안 졸고 안내 방송 제대로 들어서 게이트 찾으러 가는데, 한국인 중년 부부가 어디로 가야하냐고 물으시길래 티켓 확인하고 같은 귀국 루트길래 같이 가자고 말씀 드렸다.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끝까지 잘 챙겨드리려고 했는데, 하바롭스크 공항에서 내려서 버스가 나뉘고, 하바롭스크에서 국제선 환승 난이도가 확 올라가면서 이 두분을 잃어버리고, 하바롭스크 국제 공항 대기 중에도,인천 돌아오는 비행기에도 뵙지를 못했다. 부디 무사히 귀국하셨기를.

 

아에로플로트인척 하는 오로라 항공이었다.

꼴랑 세시간 비행하는데, 기내식은 잘 챙겨준다.

근데 노맛 보스.

치킨 먹을래, 생선 먹을래 하길래 생선 먹었는데 핵노맛!

저 구성 중에 맛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놀라운 사실!

 

 

하바롭스크 환승 난이도가 정말 높았던 게, 국내선에서 내려서 국제선으로 가려면 공항 밖으로 나가서 공사판 같은 길을 지나가야 한다는 거다. 내려서 다시 국내선 체크인 카운터가 나오길래 어디서 가야하나 싶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봤는데, 아무도 영어를 못하고 결국 구글 번역기를 켜서 공항 직원에게 보여주니 손짓 발짓으로 밖으로 나가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 새벽에 한국인 무리들이 좀비처럼 트렁크를 끌며 국제선 공항으로 갔다.

 

애매하게 잘 사는 것도 못 사는 것도 아닌 도시라서 그런지, 국내선/국제선 공항은 있는데 시스템이 거지같다. 정말.

국제선 까지 가는 길 표시도 제대로 안되어 있고, 길도 아닌 곳도 통과하고, 그리고 나서 본 국제선 공항은 무슨 정부청사처럼 생겼다.

외관의 아이보리색 페인팅은 구림×구림=개구림이다.

여기 역시 한시간  전에 체크인 카운터가 열리고, 엑스레이 검사대를 통과한다.

바로 거기서 야크 양말과 언니에게 줄 차를 두고 왔다. 가져라, 가져.

가족 양말 사왔다고 님들은 거절할 권한이 없으셈ㅋ 하고 미리 자랑해놨는데, 자동 거절됨. 넘나 창피.

 

 

 

 

▣ 이쯤해서 정리하는 블보-횡단열차-이르쿠츠크-리스트비얀카 여행 별 거 아닌 TIP

  * 블라디보스톡 볼 거 없음. 블보 체류 시간을 아껴서 이르쿠츠크/리스트비얀카/알혼 섬 더 볼 수 있는 일정으로.

  * 블보 한군데를 꼭 가야한다면, 독수리 전망대로. 

  * 6박 8일 환전 금액: 40만원

   - 기념품 쇼핑 빡세게 안할 거고, 횡단열차 탈 거면 30만원도 충분.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돈 쓸 일 거의 없음.

   - 은행이 토/일에는 여는 곳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한국에서 환전해가는게 낫다. 한화 환전 가능하나 환율 차이 거의 없음.

  * 시베리아 횡단열차

   - 자리는 2인 팟일 경우 1/2층, 3인팟일 경우 1/1/2층이 적당.

  * 영어 안 통함. 영어 안 써있음. 영어 안 됨.

   - 대충 키릴 문자 읽는 법/숫자/간단한 표현 외워가기. 숫자는 정말 유용함.

   - 이유 없이 웃는 게 친절이 아니라 무시인 문화라고 함. 쟈갸운 표정에 겁먹지 말자. 무서운 표정의 착한 사람들임.

   - 구글 번역기 영어 ↔ 러시아어 번역이 더 좋고, 화면에 띄워서 보여주면 다들 잘 알려줌.

  * 공항은 좋은게 국내선 구린게 국제선.

  * 시베리아 횡단열차 3박 이상이면 드라이 샴푸 필수.

  * 음료 사기 전에 알콜 도수 있는지 꼭 확인, 걸어다니면서 먹지않고, 한 곳에 머물러서 먹는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