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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17.09.30~10.06)

[이르쿠츠크] Russia 4. 어설픈 도시 이르쿠↗츠크

   Russia 4.

 어설픈 도시

이르쿠↗츠크

 

1. 무섭고 착하거나, 친절하고 어설프거나.

 

고찡과의 여행이 끝나고 우리 이제 서로 다시는 같이 여행다니지 않기로 했다. 그만큼 안 맞는 부분이 많았는데 아마도 서로 가장 힘든 부분은 나는 거의 무계획이고, 고찡은 철저한 계획자라는 것이다.

세상에 계획대로 되는 일은 없으므로, 블라디보스톡/횡단열차/이르쿠츠크/리스트비얀카 정도만 짜놓고 세부일정은 가서 결정할 결심으로 떠났는데, 고찡은 전날 저녁에 틈틈이 어디를 갈지, 어디서 밥을 먹을지 적어놓았던 모양이다. 사실 난 맛집 탐방, 먹방 여행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외국 음식 중에 일식 말고는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기 때문에 그냥 아무데서나 들어가서 먹는 걸 좋아한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우리가 갔던 혁명공원, 해양공원, 아르바트 거리와 우리가 식사했던 수프라는 다 고찡이 조사해온 곳이었다. 그래도 고찡이 양보해준건지, 이르쿠츠크부터는 조금 더 즉흥적으로 움직였다.  어떤 부분부터 즉흥적이었냐면, 숙소를 찾아가는 과정부터.

 

나름 즉흥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건, 나의 무모함과 고찡의 철저함이 있었기 떄문에

이르쿠츠크 역에 내리자마자 약간 멘붕이었다.

지난 3일간 모든 세계가 시베리아 횡단열차 한칸+화장실이었고, 보이는 풍경도 죄다 산/들/강이었는데 이르쿠츠크 내리니까 차도 있고, 건물도 있고, 사람도 있다. 게다가 많다.

 

 

 

고찡이 이르쿠츠크에서 숙소까지 버스나 트램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이미 조사해놨고, 마침 내 눈엔 트램이 들어오더라. 그것도 숙소까지 가는 1번 트램. 그래서 탔다. 트램은 정류장도 발견하기가 힘든데, 그럴싸한 버스 정류장과는 다르게 공중에 T라는 푯말이 붙어있으면 거기가 트램 정류장이다. T를 발견하고 낑낑대며 짐까지 올려서 트램을 타고, 노선표를 확인 하려는데 노선표 옆에 형광 주황색 조끼를 입은(아마 수금원인 듯) 아줌마가 러시아어로 뭐라뭐라 소리를 지르고, 옆에 있는 승객들도 뭐라고 한다. "I don't speak Russian"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니, 러시아어로 천천히 이야기해준다. 문과한테 상대성 이론을 천천히 설명해봤자 문송할 뿐이고, 빼앗긴 들에 봄이 천천이 찾아 오건 말건 이과를 패고싶을 뿐이다. 돈을 안내서 그런지, 뭐가 문젠지 모르겠어서 고찡을 쳐다보고 '뭐라는거야...'하는데 당연히 얘도 한국인이다. 손짓발짓을 다 하면서 이해해보니, 우리는 트램을 잘못 탔고, 반대쪽에서 타야한다는 말이었다. 회차 구간이 다 와서 캐리어를 끼고 타는 동양인은 당연히 잘못 탔으니까.

우리랑 같이 내린 러시아 아주머니가 "Are you Chinese?" 하신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영언지, 차이나고 뭐고 반가워서 웃으면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여동생이 중국에 있어서 우릴 보니까 그 여동생이 생각났다고 반대편에 있는 정류장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보라색 코트에 단발머리를 하신 멋쟁이셨는데, 일단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트램 안에서는 너무 무서웠다구.

 

영어→러시아어 번역을 하면 그럴싸하게 되는 것 같은데, 구글 번역기가 꽤 좋은게 번역이 끝나고 가로로 화면을 전환하면 번역된 문장이 가로로 뜬다. 꽤 자주 써먹었는데, 이런 걸 보면 러시아 아주머니들이 되게 귀여워해준다.

 

호되게 당한 친절 덕분에 트램에 올라탔다. 큰 캐리어와 함께 타면 캐리어에도 돈이 붙는다. 대신 우리나라처럼 거리 비례는 아니고, 그냥 돈을 내면 된다. 수금원 아주머니도 무섭게 친절하다. 트램을 맨 뒤에서 캐리어와 함께 창밖을 쳐다보며 가는데, 옆에 있는 훈남이 "Where are you from?" 한다. 러시아 입국 이래 가장 밝고 수줍으 미소로 "from South Korea"라고 했다. 훈남이 훈훈하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다. 모르는 모양이다. 싸우쓰코리아를 모르거나, 한국이 싸우쓰코리아인걸 모르거나. South Korea라고 대답한 내가 원망스럽다. 꼬레라고 아니면 낫 차이니즈라고 대답했으면 우리의 대화는 좀 더 길어지지 않았을까....? 그저 어색하게 창밖만 보고 갔다.

 

그나마 창밖이 재밌는건, 트램이 다니는 길로 차도 다닌다는 거다. 내가 알던 트램이랑 많이 다르다.

 

 

종종 트램 뒤를 빠싹 붙어서 따라오다가 트램이 멈추면 차선을 바꾸는 얌체들도 있다. 트램을 따라오는 차를 구경을 하는 동안 옆에 서있던 훈남이 내렸다. 왜 트램 차 따위를 구경했담. 잘생김을 하나하나 눈에 담아뒀어야하는데.

내리는 정류장 안내 이런 거 없다. 고찡이 열심히 구글 지도를 봤더니, 숙소 근처에 도착했다. 숙소는 고찡이 정말정말 원했던 마트료시카.

외관이 붉은 벽돌인데, 여기가 맞나 싶은 주차장에 호텔이 있다.

옆에는 식당이 있는데, 뭔가 불건전한 느낌이 나서 잔뜩 쫄았는데 지나가면서 보니까 그냥 식당이더라.

버스 정류장 앞이고 나름 교통이 편한 곳에 있었다.

 

 

안에 들어가서 체크인을 하는데, 나름 영어 잘하는 직원이 친절하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아침식사에 먹을 오트밀 종류도 고를 수 있게 해준다. 매우 친절하게 413호 키를 준다. 4로 시작하니까 4층이다.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Is here any lift?" 하니까 아주 친절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하하. 이 언니가 예쁘기도 하고 친절하기도 해서 그냥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다.

 

 

이게 괜찮아보이면 정말 대형 함정이다.

처음에는 이층짐대인데도 천장이랑 그렇게 거리가 멀지 않아서 덜 답답할 거라고 생각했다.

커튼도 예쁘고, 방도 예쁘고 깔끔해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자려고 눕는데 뭔가 지나치게 자유롭다.

이층 침대에 펜스가 없다. 침대 높이는 꽤 높은데, 펜스가 없다.

뭐지, 이 어설픈 가구는...

결국 이불을 깔고 바닥에서 자다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이층으로 올라가니 간밤에 고찡이 불안하다며 일층을 내줬다.

 

화장실도 작지만 깔끔하다고 생각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4일을 머리를 못 감았기 때문에 신이 나서 샤워를 하려는데 더운 물이 안나온다.

조금만 기다리면 나오겠지, 조금만 참으면 되겠지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그냥 찬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나서 고찡이 들어가니 더운 물이 나왔다고 한다. 그럴싸하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어설프다.

 

 

 

2. 러시아에서 몽골 음식을?!

 

여섯시면 이제 슬슬 바람도 차가워지고 한두시간 지나면 해가 저버린다. 그래도 배가 고파서 중앙시장에 가서 밥부터 먹기로 했다. 중앙 시장에 들어가니 가판대 몇개를 지나니 나름 예쁘게 색칠된 상점들이 보인다.

 

 

 

 


소세지를 파는 곳도 있고, 식료품 점도 있다.

 

고찡이 저녁 메뉴 선택은 나에게 맡긴다길래, 가장 가까이 있는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키릴을 모르는 건 둘째치고, 사진도 못볼 줄이야...

심지어 고른 음식 중에 하나는 몽골 음식조차 못되는 비프 스테이크.

 

 

COK가 Coke인 줄 알고 시켰는데 주스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소크라고 읽는다. 앞에 있던 종이컵을 꺼내주는데 주스라고 하다.

MOPC이건 블랙커런트인거 이제 안다. KOΦE는 커피일거고, YAN은 쨔이, 차다.

 

(COK, 호박즙 맛이다)

 

 

(몽골 울란바타르에서 먹었던 양 만둣국)

 

(몽골에서 마기가 해줬던 몽골식 소고기 덮밥)

 

(이건 몽골에서 아무도 안해줬던 비프 스테이크...)

 

 

그래도 꽤 고기가 고팠던 터라, 둘다 맘껏 먹었다.

 

먹고 나와서 고찡이 뭘 좀 살게 있다고 상점에 들어갔는데 나와보니 해가 졌다.

이쯤해서 펍에 들어가주면 좋을 것 같은데 고찡은 해가 지면 들어가야한다.

우리 좀 안 맞는 것 같아.

그래도 방 안에서 군것질 좀 하려고 가게에 들어가서 러시아 맥주를 사고, 술을 안 먹는 고찡은 레몬에이드를 샀다. 안주로는 신기하게 생긴 서양 자두와 몽골식 만두를 샀다.

밀가루에 양고기를 넣어서 튀긴 건데, 나는 몽골 투어 첫 식사로 먹었던 건데 고찡은 안 먹어 봤다길래 하나 샀다.

서양 자두를 살 때는 과일 가게 아저씨가 "안냐세여." 도 해줬다. 얼마만에 벗어난 '니하오'인지.

한국 드라마를 많이 봐서인지 이민호랑 안냐세여를 아는 것 같다.

이민호가 나온 드라마를 본 적은 없지만, 기분 좋게 Poka! 하고 돌아왔다.

 

 

방에 와서 고찡이 레몬에이드를 먹더니 마음에 든다고한다.

궁금해서 한 입 먹는데, 뒷맛에 알콜향이 났다. 이거 술 아니야? 하고 보니 6.9도이다. 고찡 얼굴이 금세 빨개졌다. 고찡은 맥주 한캔만 마셔도 잠든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사온 발티카9을 한 입 마셨더니, 영락없는 스트롱비어다. 확인해보니까 8.1도. 500ml 캔인데, 누가 이런 큰 캔에 무식하게 높은 도수를 담나 싶어서 반만 마시고 세면대로 흘려보냈다. 보드카국에서는 맥주를 물 대신 마시거나, 체이서로 마신다던데 이건 좀 아니지 않냐? 누가 억지로 먹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대충 정리하고 잤다. 몽골음식과, 바른 생활과, 술의 밤.

 

 

3. 이런 것도 박물관으로 만들어?

 

아무리 횡단열차를 타고 삼박 사일을 달려서 도시로 왔다지만, 이르쿠츠크도 지방 같은 느낌이 난다. 트램도 있고,기차역도 있고, 쇼핑센터도 있고, 교통도 편리하지만 뭔가 한적한 느낌이 든다. 러시아의 대전같은 느낌이다. 인천에서 태어나 대전에 살면서 러시아의 월미도(블라디보스톡)과 러시아의 대전(이르쿠츠크)에 왔다. 바이칼호수는 충주호 정도 되지 않을까...? (아님)

 

전날 저녁에 어딜 갈지 잘 계획을 세워놓은 고찡이었겠지만, 차박물관이 가고 싶어서 고찡에게 그곳을 가자고 했다. 사실 엄청 가고싶다기보다는, 가는 곳마다 영국에서 생산한 그린필드 차를 마시는 이 나라에서 대체 무슨 차 박물관이 있나 싶어서 궁금했기 때문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고찡이 흔쾌히 승낙했다. 사실 안간다고 하면 각자 투어 하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고찡이 한번에 동의해서 이 말은 영원히 꺼내지 않았다.

 

이르쿠츠크는 블라디보스톡보다는 갈만한 곳이 많다. 나랑 고찡이 투어한 곳은 Museum of Tea, Museum of City Life를 갔다가, Volkonsky House와 근처의 Transfiguration Church에 갔다. 사실 그냥 가고 싶었던 곳은 Museum of Tea 였고, 다른 곳은 가보니 근처에 있길래 가게 됐다.

 

바이칼 호수를 위해서 머무를 시간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이 부근만 보고 돌아왔는데 Babr 동상이라던가, 길에 지나가다가도 눈에 띄는 Cathedral of Kazan Icon of the Mother of God이라던가, 가봐도 괜찮을 것 같다. 감에 따라서 가서 사진은 많이 찍고 돌아오긴 했는데, Tea Museum이나 City life는 별로 흥미롭진 않았고, 이름부터 진한 간지를 풍기는 마더오브갓 성당이나 바브르 동상을 못 보고 온게 조금 아쉽다.

 

Museum of Tea를 찾아갔는데, Tourist Information Centre랑 Museum of Tea랑 Museum of City Life가 모두 마당을 공유한다. 유럽 박물관인지 뭔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에 있던 아저씨가 러시아에서 들었던 러시아어 중에 가장 젠틀한 어조로 외관을 구경하라고 하길래 고찡이랑 구경했다. 깔끔하고 예쁘게 잘 꾸며놨기 때문에 사진 찍고 구경할만한 것들이 많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에게 강릉은 이르쿠츠크랑 자매 도시인 것을 비밀로 했다.

 

강릉...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이르쿠츠크의 각 자매도시들마다 그 도시의 상징이 되는 구조물이 있다. (이 어설픈 도시에서 이상할 일 아니겠지만 자매는 맺어놓고 구조물은 없는 것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 독일 등 생소한 도시들이 이르쿠츠크의 자매도시이다. 강릉은 2011년 10월 4일에 자매결연을 맺었다고 한다. 왜 하필 강릉인지는 잘 모르겠다. 강릉이랑 자매도시를 맺었다한들, 저기에 한글로 표기를 해주지도 않고 영어도 없다. 몰라? 모르면 러시아어 배우시던가ㅋ의 뻔뻔함이 너무나 멋있다.

 

 

외부에는 이렇게 창문이나, 현관, 지붕장식을 하나씩 떨어뜨려 놓고 설명해준다. 모처럼 영어로. 한국이었으면 거들떠도 안봤을 영문해설이지만, 간만에 그나마 익숙한 문자가 나온게 반가워서 화장실에서 치약 성분 읽듯 꼼꼼히 읽었다.

 

건물도 예쁘고, 쉴 곳도 많고 깔끔해서 사진 찍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몸이 조금 차가워져서 열시 오시분쯤 됐을 때 투어리스트 센터이자, 차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차 박물관의 개관시간은 10시이지만, 안에 기념품을 구경할 수 있게 해준다. 퀄도 가격도 나쁘지 않아서 별이에게 줄 마그넷과 열쇠고리를 샀다. 블라디보스톡에서 홍언니 선물을 골라놓고, 별이한텐 뭘 줄까 전전긍긍했는데 별이한테 어울리는 마트료시카 열쇠고리를 샀다.

 

이거 보고 진짜 빵터졌는데, 한쪽 벽면으로는너무나 화려한 마트료시카와 너무나 귀여운 네르파 굿즈가 잔뜩 있는데, 마그넷 쪽으로 가보니 이게 누구야...

모자쓰고 망원경 들고있는 정은샷부터, 누가봐도 합성인... 곰... 심지어 저 선글라스는 각도에 따라서 벗은거 쓴거 다 보여준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철의 왕좌에 앉아있는 굿즈도.

킬링 포인트는 저렇게 자랑스럽게 푸틴 굿즈를 붙여놓고, 가격은 제일 싸다는 거.

살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친구들에게 쓸 엽서를 몇장 샀는데, 내 뒤에 있던 외국인은 곰을 타는 푸틴인지, 푸틴 상반신 노출인지를 샀다. 용기가 넘나 부럽.

지만 결국 나도 리스트비얀카에서 푸틴굿즈를 사게됩니다.

더 웃긴건 푸틴 굿즈 사고 나서 인스타에 영어고, 러시아어고 하나도 안쓰고 #푸틴굿즈 태그해서 올렸는데, 수많은 러시아인들이 댓글로 브이와 하트를 달고 갔다. 아니, 나는 덕질한게 아니라고.

내 픽은 지훈이인데... 푸틴이 아닌데...

본진은 러시아가 아니라 빅스인데요...

 

 

나름 러시아의 대표 관광정보센터답게 무료 책자들이 있다.

꽤 두껍고 정보도 꽤 많은데, 영어로 쓰여져 있는 건 두 개 정도이다. 표지에 영어로 쓰여져 있어서 영어인줄 알고 펴봤더니 러시아어 한가득. 꿀떡인줄 알고 먹은 송편소가 콩인 느낌.

 

관광센터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여행자들이 따뜻한 차를 마시며 앉을 공간도 마련해놨다. 이렇게 따뜻하고 아늑하게 만들어놓고 누구도 이런게 있다고 알려주지도 않고 권하지도 않는게 러시아답다.

 

 

 

10시가 되어 차 박물관에 가려하니, 시티 라이프 박물관에서 티켓을 끊어와야 한단다. 티켓 하나를 끊으면 두 곳을 다 볼 수 있다. 그래서 간 김에 시티라이프 박물관도 보고왔다. 시티라이프 박물관은 19세기 도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저 문화 그대로를 보여준다. 사용하는 소품, 사진, 방의 모습 등. 딱히 가사노동을 보여주기보다는, 잘 먹고, 잘 놀고, 돈 잘 세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아 상류층들의 삶인 듯 하다.

 

19세기의 삶이니, 시간 상으로도 멀지 않고, 뭔가 대단히 역사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전시해놓은 곳은 아니라서, 이것저것 만져볼 수 있다. 만지면 망가질 것 같은 것들은 장에 넣어놓거나 만질 수 없도록 막아놓았는데, 그 외의 것들은 다 직접 앉아보고, 만져보고 할 수 있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포토존이 될 수 있다. 가자고 말한 건 나였는데, 사진찍는 걸 좋아하는 건 고찡이라서 나름 잘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박물관의 좋은 점을 여기 들를 때부터 알았는데, 외투를 보관해준다는 거다. 역시 겨울나라는 다르다. 티켓팅해주시는 아주머니가 이 방에서 고찡이랑 나랑 사진 찍고 돌아다니는 걸 손녀딸 보듯 웃으면서 보셨다.

 

 

(경쾌한 소리를 상상했지만 조율이 하나도 안되어있음.)

 

 

 

 

 

 

 

 

 

6개의 방을 사교모임, 아이방, 파우더룸 등 컨셉을 잘 잡아서 꾸며놨고 돌아보는 데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자상한 아주머니에게서 외투를 찾아서 차 박물관으로 갔다.

 

차 박물관이라고 거창한 걸 상상하면 안되고, 사무실 두개 정도의 크기로 되어있다. 시베리아의 도시 중에 가장 번화한 편인 이르쿠츠크가 중국과 몽골의 귀중품들이 거래되는 곳이었다고 하니, 중국에서 들여온 차를 러시아 문화에 맞춰서 잘 발전시킨 듯 하다. 차 문화의 시작점이 중국이 되는 것은 러시아어를 몰라도 대충 둘러보면 짐작할 수 있다.

 

 

 

영어가 1도 없어서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차를 어떻게 운반했는지겠지, 뭐.

 

 

 

틴캔, 틴캔에 담긴 차 다 너무 좋다.

 

차 좋아하는 부잣집 친구네 놀러온 기분

 

 

그래도 명색이 박물관인데, 누군가의 스크랩북 같은 느낌이다.

내용은 역시나 러시아어이므로 알 길이 없다.

그래도 구닥으로 찍었다고 뭔가 따뜻하고, 아날로그한 느낌이 난다.

 

시시하다면 시시하고, 잘 알아보고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될 것 같은.

굳이 이걸 박물관으로 만들었나? 싶다.

 

 

 

3. Volkonsky House,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온 여성

 

볼콘스키 대공의 집은 모처럼 또 영어로 잘 젹혀있는데, 세르게이 볼콘스키 공이 유배와서 살았던 집이라고 한다. 세르게이 볼콘스키는 러시아 군주시대에 입헌군주제와 농노 해방을 주장하며 난을 일으킨 데카브리스트이다. 우리나라 노예제도들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며 직접 들고 일어난 것에 비해, 현상 유지가 되면 잘먹고 잘 살 수 있는 귀족 청년이 개혁을 위해 난을 일으키고 유배당한 것이다. 훌륭한 행동이나, 이르쿠츠크의 볼콘스키 하우스는 세르게이 볼콘스키 공보다는 그의 아내에 마리아 볼콘스키에게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들어가보진 않았지만 이 볼콘스키 하우스를 보고나서 쭉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리아 볼콘스키의 동상도 세워져있고, Princess of Siberia로 추앙받고 있다. 

 

 

이유인 즉슨, 마리아 볼콘스키도 꽤 잘나가는 귀족 가문의 딸이었고, 남편이 시베리아 같은 곳으로 유배당해 갈 때는 주변에서 이혼을 종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마리아 볼콘스키는 처음으로 유배당한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로 왔다고 하고, 마리아를 시작으로 다른 여성들도 시베리아에 오게 되고 마리아로 인해 이르쿠츠크의 문화가 크게 발전하게 된다. 세르게이 볼콘스키를 따라 온 것이 로맨틱한 이유인지 아니면 이념에 대한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시베리아의 날씨를 생각해보면 대단한 모험가인듯 하다. 그래서 Princess로 불리기는 조금 아깝다. 볼콘스키 부부에게는 Pioneer라던가. 그런 진취적인 이름이 더 어울린다. 촌스럽지만.

 

 

 

목조 건물이고, 잘 꾸며져 있다. 날씨가 좋아서 사진이 잘 찍힌 걸 감안하더라도 꽤 멋진 건물이다. 마리아 볼콘스키, 유배 온 데카브리스트들과 그의 아내들에 의해 시베리아의 교육과 문화, 복지가 발전했다고 한다. 귀족의 생가보다는 혁명가의 흔적이 담긴 건물이니 안에 들어가도 볼게 많다고 한다.

 

조로!!!! 스타워즈!!!!

 

그런데 나는 시간이 많지 않아 마당만 둘러보며 이딴 무의미한 사진만 찍고 나왔다.

 

 

마리아 볼콘스키 동상이 있는 공터에는 벤치가 있는데, 벤치가 으마무시하게 크다.

러시아는 뭐 하나 하면 작은 게 없다.

땅도 넓고 사람도 크니 이상할 거 없겠지만.

 

 

 

 

볼콘스키하우스와 마트를 들르고, 바로 바이칼 호수를 보러 리스트비얀카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블라디보스톡을 포기해도 좋으니 이르쿠츠크에 조금 더 있을 걸 그랬다. 시골 동네치고 나름 볼 것도 많고, 다닐만한 곳도 많다.

 

이르쿠츠크가 러시아의 파리라고 한다. 

파리에 가본 적이 없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이르쿠츠크가 아무리 볼게 많아도 파리가 이거라면 파리에는 가지 않겠다.

 

 

그래도 누가봐도 화려하고, 이름조차 화려한 마더오브갓 성당을 못간게 천추의 한이 되어, 나중에 알혼섬 투어를 위해 바이칼 호수를 다시 찾는다면 다시 들러볼 의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