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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블라디보스톡-이르쿠츠크(17.09.30~10.06)

[리스트비얀카]Russia 5. 바이칼의 도시, 리스트비얀카 1

   Russia5.

바이칼의 도시

리스트비얀카

1. 지금 물고기 잡으러 가신 것 같은데요.

중앙 시장 쪽 Golden Lion 앞으로 가서 차도를 오른편에 놓고 쭉 걸어가면 주차장처럼 생긴 곳이 나온다.

거기 가서 하얀 사설 버스 앞에서 서성이는 아저씨에게 리스트비얀카? 하면 리스트비얀카 가는 버스를 알려준다.

리스트비얀카 갈 때도 120루블에 50루블 짐값. 짐값을 내서 미안해할 필요가 없는데, 짐으로 꽉 찬 버스에 사람이 타면 미안해지는게 본투비 쭈구리의 심정이다. 혹여라도 목적지를 지나칠까 걱정했는데, 종점이었다. 오늘 내일 사소한 걱정이 심한데, 내일이 인생의 종점일지도 모르니까 걱정없이 YOLO해야겠다. 그래서 오늘도 680ml 파울라너와 나초를 시켜놓고 글을 쓴다. 쓰는 중에 다 먹으면 하나 더 먹어야지.

 

버스를 타고 도착하면 바로 앞에 Mayak Hotel이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호텔이라고 해서 예약했다. 외관이 알록달록 예쁘기도 하고.

항상 그런 걸 조심해야 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우리 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내 친구 중에 가장 잘생긴', '업계에서 가장 많이 주는' 이런 거.

그나마 좋은 것들은 '그나마'라는 한없이 축소된 영역에서 우수할 뿐...

100명 중에 1등이 50,000명 중엔 49,901등일 수도 있다.

Mayak Hotel은 그렇게 나쁘진 않았고, '러시아 안에서 만난 숙소 중에서는' 최고였는데, 샤워 부스 안에 배수가 잘 되지 않고 엘리베이터 작동이 잘 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작동 시스템은 내가 잘 모르는 것일수도 있는데, 1층에서 3층은 잘 올라가지만, 3층에서 부르면 엘리베이터가 오지도 않고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인디케이터도 없다.

그래도 내부는 깔끔하고, 수건도 많이 주고 나쁘지 않았음.

 

 

 

 

Mayak hotel에 대충 짐을 풀고, 호텔 안에 있는 편의시설을 보다보니 바이칼 호수에서만 난다는 생산 오물(Omyl)을 파는 곳이 있다고 한다.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고찡이랑 같이 가기로 했다. 1층에 있는 식당이다.

가서, 구운 오물과 돼지고기 샤슬릭을 시키고 종업원에게 뭔가 추천할만한 메뉴가 있냐고 물어보니, 없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예...?

이게 바로 팁이 없는 문화다.

어색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만두를 추천해주길래 그것도 시켰다.

 

가장 먼저 나온 건 만두

 

 

 

고기 다진 것 안에 고수가 들어가 있는데, 꽤 맛있다.

그런데 고찡은 고수를 못 먹어서 하나하나 골라내고 먹었다.

우리 좀 안 맞는 것 같아.

만두는 순식간에 끝나고, 어린 아이까지 7인 팟 중국인 가족이 들어왔다.

중국인 가족은 만두를 20개 정도 시킨 것 같다. 아니, 그보다 더 많을 수도...

암튼 그 중국인 가족의 만두가 나오는 동안 우리의 생선은 나오지 않았다.

생선 잡으러 가신 것 같은데......

생선 잡으러 가셨어도 지금쯤이면 나왔을 것 같은데...

하염 없이 세월이 흘러, 살짝 늙어갈 즈음에 구운 오물이 나왔다.

 

 

이렇게 플레이팅만 그럴싸하게 나오는데, 사실 이름과는 달리 맛있는 생선이다.

근데, Fish Market에 가서 먹는게 더 맛있다.

혼자 설렁탕 먹을 때, 주모 국밥 하나 말아주소! 하고 며칠 굶은 사람처럼 우걱우걱 먹거나 아픈 척 하면서 죽 먹을 때 더 맛있는 것처럼 오물도 Fish Market 한 구석에서 젓가락 없이 손으로 뜯어먹어야 더 맛있다.

가격은 여기도 싸고 거기도 싸서 별로 신경 안썼던 것 같다.

이 동네 물가가 싸서 밥 먹을 때, 메뉴당 10,000원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오물은 민물고기임에도 불구하고 약간 고등어나 삼치같은 느낌이 나는 흰살 생선이다. 아주 싹싹 발라 먹었다.

이르쿠츠크 공항 면세점에서 Smoked omul을 하나 사서 남자친구에게 가져다 줘서 1~2주 냉동보관 하다가 구워먹었다고 하는데, 육포같은 식감에 짭쪼름하니 맛있는 맥주안주라고 한다.

 

 

어머니가 요리를 잘하시는 가정에 속해있는 자이기 때문에 내가 요리해도 맛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다.

근데 그냥 구우면 되는 거니까 아마도 똑같지 않을까...?

장어 外 민물고기는 무척 가려서 상해에서 나오는 생선찜은 못먹었는데, 이건 맛있다. (어딜 가도 음식은 잘 안가렸는데, 상해는 음식 난이도가 높은 것 같다.)

근데 맛있는 건 둘째 치고, 한참이 지나도 샤슬릭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버액션토끼 키우기 게임을 했다.

동행이랑 잘 맞지 않지만, 편안한 사람일 경우 스마트폰을 많이 보게 된다.

 

 

 

정말 기다리기 지루해서 술이 약간 함유된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칵테일 아이스크림인 것 같은데 일단 럼이 들어가면 무조건 맛있어지기 때문에 럼이 들어간 걸로 시켰다.

아이스크림을 시키면서 샤슬릭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려고 종업원을 부르는데, 종업원이 주방에 들렀다가 온다. 아마 그녀도 알겠지, 우리 음식이 지나치게 늦게 나온다는 걸. 음식 두개를 먹는덴 30분도 안 걸렸지만, 일단 기다리는데 한시간 정도 썼다. 그런데 안나온다. 아이스크림을 시키자마자 언제 샤슬릭이 나오냐고 물어보니까, 4minutes이라고 칼답을 한다. 마치 준비해 온 사람처럼.

 

 

 

 

 

물어보고 나서 4minutes은 무슨, 10minutes도 더 지나서 나왔다.

 

아마 안 물어봤으면 안나왔을 것 같다...

너무 화가 나지만, 샤슬릭이 맛있으므로 참는다.

화력이 좋지 않은지 약불에서 오래 구운 것 같다.

먹는데는 나오는 시간 반의 반도 안걸렸다. 금방 계산하고 나왔다.

약간 늙는 거 좋아하면 Mayak hotel 식당 가면 될 것 같다.

 

 

2. 바이칼 호수의 교통 수단 탑승

 

 

세시에 식당을 나와서 Mayak Hotel 앞에 있는 관광정보센터에 갔다.

러시아는 정말 드물게 영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꽤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 언니가 있었다.

사실 언니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예쁘니까 언니야.

바이칼 호수 투어를 하고 싶고, 보트 투어도 하고 싶다고 가서 말하니까 거기서 제공하는 보트 투어는 내일 13시이고, 인당 600루블이라고 한다. 8명이 모이면 보트 투어를 할 수 있고, 보통은 8명이 모인다고 하니 예약을 했다. 오늘 뭐 할만한게 있을까 물어보니 환 바이칼 종착역인 뽀르트바이칼로 가는 배가 있는데, 가서 보는데에는 30분도 걸리지 않으니 16시 15분 배를 타고 갔다가, 17시 배를 타고 돌아오면 된다고 한다. 다만, 17시 배가 막차니까 조심하라고. 17시 막차를 타고 돌아오면 바이칼 박물관에 갔다가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도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바이칼 호수가 보고 싶어서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찡에게 일단 바이칼 호수 앞으로 가서 배를 탈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배를 타고, 바이칼 뮤지엄에 갔다가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가고, 아니면 그냥 바이칼 뮤지엄에 갔다가 전망대에 가자고 했다.

바이칼 뮤지엄까지 가는 버스를 타려니, 버스에서 승차 거부를 한다.

아마 돈도 안되고, 사람도 붐벼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운 좋게 앞에서 대기하던 택시를 탔다. 두명 모두 해서 200루블. 걸으면 꽤 걸을만한 거리를 택시를 타고 가서, 바이칼 뮤지엄 앞에 내렸다. 바이칼 뮤지엄에 가기 전에 보트를 타려고 선착장에 가려고 하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부른다. 굳은 표정으로 부르길래 혹시 인당 200루블로 바가지 쓰는 거 아닌가 하고 잔뜩 긴장하고 가니, 매우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이칼 뮤지'하면서 바이칼 뮤지엄을 가리킨다. 우리가 길을 잃을까봐 걱정이 되셨나보다. 그래서 보트를 탈 거라고 대충 설명하고 왔다. 참 속은 따뜻하지만 무뚝뚝한 김첨지들이다.

보트가 하나 세워져있고, 뭔가 투어 비슷한 간판이 붙어있길래 가서, 'Boat Tour?' 하는데, 또 러시아어다.

기대도 안했어.

그래도 영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는 사람을 불렀는데, 정말 조금 할 줄 알아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못 탄다는 뜻인 것 같다. 그런데, 주변에 배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길래 일단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선착장 아래로 내려가서 바이칼 호수 물을 만져봤다.

예상대로 무척 차다. 그치만 감동이야. 이렇게 바이칼 호수에 손가락을 담궈볼 줄이야...

 


고찡이랑 물수제비 얘기도 하고, 어마어마하게 큰 바이칼 호수 이야기도 하다 보니 누가봐도 관광보다는 운송에 초점을 맞춘 배가 도착했다. 16시 15분에 도착한다는 그 배가 도착한 것 같아서 고찡이랑 탑승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바이칼 호수지만 아직까진 실감이 안 난다.

눈으로는 어마어마하게 큰 게 느껴지지만, 감으로 와닿지가 않는다.

 

 

 

누가봐도 운송수단.

한국이었으면 타서 새우깡 들고 갈매기 어그로 끌만한 배 도착.

배에서 가만히 호수를 구경하다보면 수금원이 와서 60루블을 걷어간다.

 

 

 

 

 

 

 

아무래도 섬으로 가는 짧은 직선 구간을 운행하다보니까 투어 보트처럼 뱅글뱅글 돌진 않는다. 하지만 아직 보트 투어를 맛보기 전이었으므로 충분히 훌륭했다. 연남에일을 를 맛보기 전 카스랑 하이트가 맛있는 맥주인 것처럼(물론 그 전에도 맛없긴 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니야. 어쩌지...) 그래도 배 밑으로 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투명해서 바닥이 보인다. 이렇게 맑은 담수호라니, 너무 신기해.

 

 

배를 내리니 16시 30분 정도 됐었고, 15분 정도 짧은 운행구간이지만, 17시 15분에 다시 배를 타야하기 때문에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뽀르트바이칼은 포토존이 매우 많다=고찡의 발걸음이 늦어진다.

 

내리자마자 핫케익 광고가 있고, 사람들이 그쪽으로 걸어가길래 걸어가다가 뭔가 이상해서 오시는 분들에게 터널 사진을 보여줬더니, 반대쪽이라고 한다. 반대쪽으로 걸었다.

옆으로는 바다같이 펼쳐진 호수, 눈 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기찻길이 있다.

나중에 찾아보니 기찻길을 까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그 시신들은 모두 터널에 묻어졌다고 한다.

주변은 예쁘게 꾸며져서 걷는 동안에는 최대한 바이칼 옆으로 즐기며 걸었지만, 사실은 슬픈 곳이다.

시간이 부족해서 터널까지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산책로로는 최고다.

 

 

실제로 이런 약간 어두운 분위기인데, 그게 나름 운치가 있다.

리스트비얀카나 여기나 목조 주택이 무척 많고 검게 변한 나무들의 느낌이 좋다.

탄광촌 같다는 느낌도 약간 들었다.

이 마을이 너무 예쁜게 기찻길을 걷다보면 좌측으로는 산이, 우측으로는 바이칼 호수가 있다.

 

 

 


 

뽀르트 바이칼 역(아마도)

약간 호그와트 생각나게 하는 기차가 서 있다. 앞 부분이 알록달록 하니 예뻐서 사진도 잘 나온다.

사실은 죽은 이들이 묻혔다는 그 터널까지 가보려고 했는데, 마지막 배를 놓칠까봐 마음이 급해서 16시 55분에 되돌아왔다. 러시아 와서 만난 가장 좋은 호텔인 마야크 호텔을 놓치기도 싫었고, 누가봐도 여기 괜찮은 호텔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으니까. 살짝 비도 내렸고. 이번 여행이 아쉬운 건 여러 군데 가긴 했지만 시간에 쫓겨 늘 한 곳을 여유롭게 즐기지 못했다는 것. 다음에 다시 와서 천천히 즐기고 싶다.

 

(비내림)

(뽀르트 바이칼과 구닥은 잘 어울린다.)

 

다시 배에 올랐을 때 많이는 아니지만 비가 꽤 내려서 맞으면 감기 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지붕이 있는 쪽으로 들어갔더니, 수금하시는 분이 선실 내로 들어가라고 권해주신다. 정말 운송수단으로 이용되는 배이기 때문에 풍경에 대한 미련없이 그냥 선실로 들어갔다. 좁지만 러시아 아주머니들 두세분이 계시고, 공기가 따뜻하다. 고찡도 뒤늦게 들어와서 아주머니 사이에 앉았는데, 아주머니들이 고찡 청바지를 보더니 (아마도) '너 여기 찢어졌어!' 하면서 꺄르륵 웃으신다. 순박하고 귀여우셔서 기분이 좋아졌다. 러시아에 와서 처음으로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아주머니들이라서. 정말 오랜만에 눈이 마주치면 미소지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3. 해 지고, 길 잃어버리면 안되니까.

 

배에서 내려서는 그래도 바이칼 호수에 왔으니 바이칼 뮤지엄에 들어갔다. 러시아에서는 바이칼 뮤지라고 하면 알아듣는다.

(돈쓴 티 내는 티켓:300루블)

 

 

 

이르쿠츠크에서 만났던 박물관처럼 겉옷을 걸어두고 들어가면 바이칼 호수에 대한 정보를 구경할 수 있다. 정보의 획득이 아니라 정보의 구경인 이유는, 러시아어를 모르기 때문.

보통 박물관에 가면 아주 자세하게 열심히 보는 편인데, 나랑 잘 안맞는 고찡은 사진을 찍고 이동하는 스타일이고거의 모든 문자가 러시아어이기 때문에 어떤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그래도 바이칼 뮤지에는 지루한 이름과는 달리 아쿠아리움도 있다. 

 

 

바이칼 호수에 사는 애들만 넣은 게 맞다면, 바이칼 호수에는 상어도 산다.

이르쿠츠크부터 끊임없이 봐왔던 애들이 바로 물범 네르파이다. 심지어 이르쿠츠크는 바브르가 도시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네르파 굿즈가 더 많다. 네르파가 더 귀여워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아쿠아리움에도 네르파가 있다.

꽤 좁은 곳에 있는데, 그래도 사진 찍기 빡셀 정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그래도 저런 뚱뚱한 비주얼 너무 귀여워. 눈 마주치고 싶은데, 너무 빠르게 헤엄쳐서 불가능하다. 한편으로는 마음 아프다. 눈 앞에 끝없이 넓게 펼쳐진 바이칼이 있는데, 이런 좁은 수족관에서 살다가 죽어야한다는게.

 

 

 

지구의 눈이라는 바이칼의 자자한 명성과는 달리, 바이칼 뮤지는 아담하다.

지구의 눈을 내 눈에 담고 싶어서 바이칼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었다. 그래서 케이블카(라고 하지만 사실은 리프트)를 타고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어서 티켓을 살 때부터 케이블 카를 물어봤더니, 나가서 왼쪽인지 뭔지에 있다고 한다.

 

일단 나와서 걷는데, 리프트가 보이지 않아 저쪽에서 걸어오는 10대 세명이 있어 '그졔 케이블카?' 하고 물어봤다. 금발 남자애, 금발 여자애, 검정 머리에 투톤으로 초록색 염색을 한 여자애 한명 이었는데, 초록 염색을 한 여자애가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Do you speak Russian?' 한다. 상대를 최대한 배려해서 러시아어로 물어봤는데 누가봐도 비웃는게 느껴진다. 인종차별도 아닌게, 자지러지게 혼자 웃고 있는 여자애가 동양계이다. 기분이 상해 금발 머리 남자애와 여자애를 쳐다보니 곤란하다는 듯이 'We don't speak English.'라고 하길래, 그냥 지나쳐왔다. 길 물어보고 이토록 비웃음 산 건 처음으라서 매우 기분이 상한다. 아무리 러시아어 발음이 구려도 그렇지... 그래도 다시 할아버지 한 분에게 물어보니 매우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셔서 그 길로 한참을 걸었다. 그래도 나오지 않는다. 다시 저쪽에서 걸어오는 마을 사람이 보여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니, 러시아어로 뭐라고 물어보며 웃는다. 그 때 고찡이 겁을 먹은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친절하게 길을 알려줬던 할아버지가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고 말해주는데 이미 고찡이 겁먹었는지 조금 가다가 '해가 지면 길을 잃어버릴 것 같으니 내려가자' 라고 한다.

해가 졌다고 길을 잃어버리기엔 아직 저녁 6시이고, 외길이다. 잃을 만한 길이 없다. 그래도 가자고 우겨볼까 하다가 그냥 내려가자고 했다. 블라디보스톡 독수리 전망대에서 '나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치만 볼 수 있으면 행복하다'고 했는데, 나한텐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해지고, 길 잃는' 이유로 포기하자고 한다. 성격의 차이겠거니 하고, 그냥 내려가지만 우리 좀 안 맞는 것 같아.

그래도 조금 위로가 되는 건 '해지고 길 잃을 수도 있지만'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나는 약간 기분이 상했고, 고찡은 물가 낭떠러지로 바짝 붙어서 위험하게 걷는 내가 맘에 안들었나보다. 그쪽에 있는 돌 구조물로 징검다리 건너듯 뛰어가니까 그것도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는데 화가 난다. 어두워지는 것도, 길 잃는 것도, 러시아 마을 사람도 무서우면 대체 왜 러시아에 온 건지 모르겠다. '네가 위험한 것도 아니고 내가 괜찮다는데 왜 네가 하지 말라고 해?' 라고 하니, '휴, 난 너 너무 위험해서 못 보겠다'며 저멀리 앞질러간다. 사람 다니라고 만들어 놓은 길로 가는데, 뭐가 문젠지 우리 좀 안 맞는 것 같아

 

끝장나게 안맞는 둘인데, 바이칼 호수는 여전히 넓고 멋있다.

둘의 걸음이 동시에 멈추는 순간은, 나무에 가려져 있던 멋있는 풍경이 나오는 시점이다.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멋져서,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바이칼 호수를 산책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걷다가, 슈퍼가 보여서 들어갔다.

나는 귀여운 곰돌이가 그려진 맥주를, 고찡은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맥주는 야르피보....? 뭔지 모르겠지만 꽤 괜찮은 편이었지만, 평범해서 잘 기억은 안난다.

아이스크림은 분명 맛있었지만 양이 건방졌다. 그래도 비싸지 않으니까.

 

 

나는 마실게 들어가고, 고찡은 단 게 들어가니 약간 마음이 풀려 가다가 있던 카페에 들어가기로 했다. 리스트비얀카 클럽 옆에 있는 샤먼 카페이다.

샤먼 카페는 예쁜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아준다. 딱 먹고 싶었던 보르쉬를 글씨로 써서 가서 보여주니까, 재밌다는 듯이 웃으면서 알겠다고 한다. 비트로 만든 수프도 먹으려고 했는데, 그건 다 떨어져서 없다고 한다. 그래서 보르쉬와 사워 크림에 찍어먹는 만두, 오물 with mushroom과 오물 with cheese를 먹기로 했다.

 

입구에 있던 각국의 지폐들, 이 곳을 거쳐간사람들이 붙여 놓은 듯 하다.

나도 하나 붙여놓을까 하다가, 이미 천원짜리는 많고, 지폐에 낙서하기가 싫어 그냥 나왔다.

 

보르쉬(토마토스프), 감자 만두, 버섯 오물, 치즈 오물, 그리고 닭고기 샤슬릭


 

 

닭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시베리아 열차에서 고찡이 어느 순간부터 치킨이 정말 맛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하길래 닭고기를 시키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그렇게 맛있다는 샤슬릭이라도, 닭고기는 한조각 이상 먹기 싫다.

 

 

 

밀가루 피 안에 감자가 들어있는 탄수화물+탄수화물=탄수화물×2인데, 사워크림과 같이 먹으면 맛있다.

계피맛 안나는 바람떡 같다.

 

그렇게 먹고싶었던 보르쉬.

햄이 들어가서 부대찌개 맛이 난다.

그래도 안에 사워크림을 뿌려주는데, 그게 맛있다.

부대찌개는 싫지만 사워크림과 같이 먹으면 맛있다. 

 

구운 오믈에 치즈를.

치즈는 항상 옳지.

 

버섯 오물은 오물 살을 불리해서 버섯과 같이 계란을 풀어 구워주는 것 같은데,

동그랑땡 맛이 난다. 동그랑땡 별로 안좋아해서 하나 겨우 먹고 남김.

 

이 식당이 너무나도 인상깊었던 이유는

1) 먹고 싶었던 러시아 음식: 감자 만두+보르쉬

2) 깨끗한 화장실

3) (그나마) 빨리 나오는 음식

4) 친절한 종업원

 

드디어, 이제서야, 자본주의 마인드가 있는 카페를 만났다.

물을 달라고 하고, 'cold one'이라고 말했는데 아주 뜨거운 물을 가져다 줬다.

검색해보니 hot water가 горячая вода(코랴챠 보다) 라고 한다. 분명 잘못 들은게 분명한데, 날씨가 추우니까 그냥 먹기로 했다.

 

대충 다 먹고 닭고기 샤슬릭이 남았는데, 고찡이 이 닭고기가 한국에 가면 얼마나 큰 가치를 갖는지 아니까 배부르지만 천천히 다 먹겠다고 하길래,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해는 졌고, 네 말대로 길 잃을지 모르지만 닭고기는 천천히 먹어...

 

역대 여행 중 가장 큰 돈을 지불한 식당이다. 그치만 만족해.

 

 

 

4. 우리 정말 안맞는 것 같아.

 

고찡이랑 사실 아슬아슬했던 순간이 몇번 있었다. 나의 깐족거림과 그때 그때 상황봐서 돌아다니는 무계획을 참지 못한 고찡과, 지나치게 안전한 여행을 하려는 고찡을 참지 못하는 나, 둘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을 거야. 그런데, 호텔 숙소에 들어와서 샤워하고 나오니 고찡이 이르쿠츠크 중앙시장에서 봤던 야크 양말을 사고 싶어서 이르쿠츠크로 일찍 돌아가는게 어떻겠냐고 한다. 몽골에서 샀던 야크 양말인데, 여기서 더 살 수 있어서 사고 싶다고...

어딘가에 가면 가장 사진이 잘 나오는 곳에서 셀피를 찍고 돌아가는 고찡과, 최대한 눈에 담고 블로그에 올릴 사진과 엄빠에게 보낼 사진을 찍는 나랑 여행스타일이 잘 맞았던 건 아닌데, 그래도 부딪힐 일은 없었는데 야크 양말 때문에 돌아간다니까 너무 화가 났다.

'바이칼 호수가 메인인데 돌아가면 어떻게 해?' 라고 하니까, 중앙 시장이 6시에 닫으니까 내일 보트투어를 하고나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보트투어는 1시부터 1시간이 채 안되게 타는 거고, 나한테는 처음부터 이 곳을 온 목적이 바이칼 호수였기 때문에 일단 내일 상황을 보고 정하자고 거절했다. 바이칼 호를 보면 둘 중에 한 명 마음이 변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데 대뜸 고찡이 '그럼 내일 산책을 여섯시쯤 일어나서 하고 밥 먹는 건 어때?' 라고 말한다. 여섯시에 해가 안뜨는 거 모를 것 같지 않아서 화가 나서, '그래, 내일 보트 타고 그냥 이르쿠츠크 가자. 가서 양말 사자.' 라고 하니까 '아냐, 나도 여기 오래 있고 싶지. 더 있다가 가자.' 하고 말한다. 우리 정말 정말 안 맞는 것 같아. 양말 때문에 눈 앞에 있는 바이칼 호수 포기하는 건 말도 안돼. 리프트를 안 탄 것도 마음에 남아 꽁해있어서 결국 약간 마음이 상한 채로 잠들었다. 이런 멋진 호수를 두고, 이런 기분으로 잠들어야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