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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몽골여행기(17.07.29~08.05)

Gobi Tour _ Day5. 낙타 회초리와 모래 싸대기

Day5. 낙타 회초리와 모래 싸대기

 

Day5-1. 낙타와의 썸은 끝...

 

별을 보며 늦게까지 밖에 있다가 샤워 타이밍을 놓쳐서 온 몸에 모래 덩어리를 품고 잠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눈 뜨자마자 귀에서도 머리에서도, 온 몸에서 모래가 우수수 떨어진다.

이게 다 모래사막의 아픈 기억...

 

샤워장에 들어가니 세면대 옆에 축전기 하나가 보인다.

아마 위쪽에 태양열 패널로 축전해서 계속 따뜻한 물을 나오게 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별이가 샤워부스에 들어가더니 따뜻한 물이 안나온다고 한다.

"별아, 여기 배터리가 있어. 그럴리가 없어. 잘 해봐. 문송합니다, 해봐."

그럴리가 없는데 별이가 자꾸 따뜻한 물이 안 나온단다.

이게 바로 이공계 육성을 해야하는 이유라며 옆쪽 샤워룸으로 들어가서 보니, 애초에 온수쪽으로는 배관 연결이 안되어 있다.

전등도 안 달린 샤워실에 배터리... 뭘 위해 있는거죠...?

 

알고보니, 태양열로 물을 데우기 때문에 아침에는 밤동안 차가워진 물로 샤워를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난 한 여름에도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찬물이 싫어서 홉스굴도 안갔는데...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니까 많은 것을 포기하게 된다.

컨디셔너 생략. 샴푸와 바디워시를 모두 한꺼번에 한 후에 대충 씻어내고 말았다.

일단 눈에 안보이면 다 씻긴거야.

 

샤워를 하고 잽싸게 낙타 탈 준비를 했다.

전날 부터 낙타 탄다는 말에 완전 신나 있었어.

마기에게 우리 낙타타는 거냐고 물을 때마다, 확실한 대답은 안 주고 유목민 게르에 가서 물어보겠다고만 했는데.

게르 도착해서야 아침에 낙타탈 수 있다고 말해줬다.

셋 다 환호성을 지름.

 

전날 허르헉을 먹기 전까지 낙타 앞에서 낙타를 관찰했는데, 정말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맘에 들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있다가, 자세를 바꾸고 앉아있다가, 돌아 눕기도 하는데.

주말의 나와 같다. 왠지 모를 동질감.

 

마기가 전날 저녁에 낙타를 저녁에 타려면 햇빛이 강렬하니까 오전에 타는 게 더 좋을 거라고 해서

전날 저녁에 모래 언덕에 가서 지옥훈련을 하고 왔는데, 왠지 오전 햇빛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오전 햇빛이 별로 안 강렬하다면서 투어 5일만에 처음으로 마기가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모자까지 썼다.

...햇빛이 강렬해서 낙타를 탈 수 없다던 어제는 민소매에 반바지를 입고 모래사막을 올라갔잖아.
똑부러지게 지적할만한 영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의심을 거뒀다.

짧은 영어는 항상 평화를 가져온다.

 

낙타는 아주 수줍고 민감한 생물이라서 다짜고짜 목덜미 털을 만지면 놀란다고 한다.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리고, 스카프처럼 흩날리는 게 있으면 놀라거나 뜯어먹힐 수 있으니 반드시 잘 묶어야 한다.

 

 

이제보니, 오전엔 햇빛이 안강렬하다고 해놓고 선글라스까지 썼네...? (배신감)

 

 

홍언니와 별이는 하얀 낙타에 타고, 나 혼자 까만 낙타에 탔다.

왜냐면 내 티칸의 모히칸은 어두운 색이거든.

최대한 티칸이랑 비슷하게 생긴 애를 탔다.

 

낙타의 코에는 나무 꼬챙이가 끼워져 있는데, 이 꼬챙이로 낙타를 일으키고 조정을 한다.

낙타 인형을 살 때, 인형을 팔던 주인 할머니가 코에 꽂힌 꼬챙이를 가리키며 핸들이라고 하고 운전하는 제스쳐를 했는데,

그 그로테스크한 그 이야기가 팩트였다, 세상에.

 

빨간 옷을 입은 낙타 주인을 선두로, 별이 낙타, 홍언니 낙타, 그리고 내 티칸을 차례로 묶어서 일렬로 갔다.

마기는 사막에서 자란 사막 청년이라 원래 낙타를 탈 줄 아는지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탔다.

부럽.

저 상태로 코 에 있는 꼬챙이와 연결된 줄을 당기면 낙타가 귀찮아하며 천천히 일어난다.

 

목덜미 털을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받아서 앞에 있는 모히칸 등털도 한동안 만지지 못하고 있다가 몰래 몰래 조금씩 만졌다.

등에 난 갈기를 만지는 것보다 등 옆을 만져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세상에 모든 동물은 긁어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등을 열심히 긁어주면서 탔다.

세상 모든 집고양이들에게 캔따개(=집사)가 있다면, 나는 낙타의 등긁개.

등긁개가 되어도 좋으니 태워줘. 좋아해줘.

열심히 긁다가 몰래몰래 갈기도 만져봄.

 

등가죽은 카펫처럼 부드러운데, 의외로 갈기털은 빳빳하다.

처음에는 내 낙타가 흥분하지 않고 얌전히 가줬으면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등을 긁었지만,

나중에는 만지는 촉감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계속 만지게 됨.

 

셋 중에 가장 쩌는 낙타는 홍언니의 낙타였다.

홍언니 낙타는 머리가 간지러운지 자꾸 별이 다리에 머리를 비비면서 긁고,

뒤로는 초록색 응가를 질질 흘리며 응가 묻은 꼬리로 내 다리를 쳤다.

그렇게 아프진 않은데, 닝겐으로 태어나 낙타한테 똥회초리 맞는게 약간 모멸감...

홍언니가 매우 흡족해했음.

 

(똥 회초리에 심기가 불편한 닝겐)

그에 반해 내 낙타는 너무나도 순했다.

너무도 순하게 응가만 흘리면서 갈 길을 갔다.

정말 헨젤과 그레텔처럼 응가를 흘렸다.

홍언니를 공격해달라고 계속 빌었는데도, 얌전히 응가만 하며 갈 길 간다.

역시 너는 낙타의 왕, 하찮은 등긁개의 말엔 똥을 싸지.

 

낙타가 냄새가 많이 날까 싶어 일부로 버릴만한 옷을 골라입고 낙타를 탔는데, 의외로 낙타한테서는 아무 냄새도 안났다.

(아니면, 우리가 같은 냄새가 났거나...)

 

전날 미리 가져간 E-book으로 낙타에 대해 많이 읽어보고 잤는데, 우리나라의 십이지 신화와 같은 이야기가 몽골에도 있다.

다만, 몽골의 십이지에서는 쥐가 멕이는 대상이 소에서 낙타로 갈음되었다.

 

십이지에 들어갈 동물 중 열 한마리를 모두 정하고, 첫번째 해에 들어갈 동물만을 남겨놨다고 한다.

다음 날 가장 먼저 해를 보는 동물을 첫번째 동물로 정한다고 했는데, 쥐가 낙타 등에 몰래 올라타 있다가 해를 먼저 보고 당첨.

낙타를 불쌍하게 여긴 신(그럴거면 애초에 십삼지를 하던가요...)이 낙타에게 각 동물들의 신체부위를 하나씩 나눠줬는데,

귀는 쥐, 코는 토끼, 눈은 뱀, 갈기는 말, 발은 호랑이, 배는 소, 등은 원숭이, 털은 양, 꼬리는 돼지 등등을 닮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각 십이지 동물의 매력포인트를 모아 놓은 키메라가 바로 낙타다.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도 예쁘지만, 전체적으로는 별로 안예쁜 그런건가...

 

몽골에는 낙타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낙타 타고 슬슬 걸으면서 마기가 낙타에 관한 이야기를 몇 개 해줬다.

 

가끔 낙타가 새끼를 낳으면 젖을 물리지 않고 모른 척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럴 때, 낙타의 등에 마두금을 올려놓으면 바람에 맞춰서 마두금이 연주가 되고, 그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그 때 새끼를 알아보고 젖을 물린다고 한다.

직접 본 적은 없으니 확인할 길은 없다.

 

 

각 동물의 매력포인트를 하나씩 모아놓은 낙타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바로 초록색 혓바닥이다.

엄청 거대한 혓바닥인데, 초록색이다.

하루 종일 풀만 먹어서 그런 것 같긴 한데, 초록색이다.

낙타에서 내리고 나서도 귀여워서 열심히 사진 찍다가 낙타가 하품할 때 초록 혓바닥을 발견하고 짜게 식어서 게르로 짐싸러 돌아감.

썸남의 이빨 사이에 껴있던 고춧가루가 다음날에도 그대로 있는 걸 발견한 기분.

 

(뭐...? 초록색...?)

(짜게 식음)

Day5-2. 바양작의 모래싸대기

 

우리의 다음 코스는 바양작.

유목민 게르에서 떠날 땐 무척 아쉬웠다.

그도 그럴게, 여행자 게르 캠프가 너무도 끔찍해서 게르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졌는데,

여기는 게르 내부도 너무 정갈하고 예쁘고, 심지어 위에 구멍을 열어놨는데도 벌레가 없었다.

내부도 아늑한데 알록달록 색감도 좋아서, 뭘 찍어도 잘나온다.

 

그래도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양작을 향해 떠남.

바양작에는 Flamming Cliff라는 절벽이 있는데, 왜 Flamming이냐고, 빨개서 그렇냐고 마기에게 물어봤는데 가서 보면 안다고 했다.

과연 아니나 다를까 빨개서 그런게 맞는 것 같다.

비닐하우스를 만들어서 감자를 키우고 있으면 미국과 중국이 데릴러 올 것 같은 비주얼이다.

 

 

바양작에 가면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게 생긴 식물이 많은데, 그게 바로 작(Zag)이라고 한다.

바양작은 = Rich Zag

근처에 작숲이 있어서 이런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마기에게 Zag은 먹을 수 있는 식물이냐고 물어봤는데, 물론 먹을 수 있지만 나는 낙타가 아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아니, 내가 지금 먹겠다는게 아니라.

 

웬만하면 즐겁게 감상했을만한 풍경이지만, 정말 바람이 너무 거셌다.

오전에 낙타타면서 날씨가 더웠기 때문에 갖고 있는 옷 중 가장 가벼운 원피스에 슬리퍼를 신고 떠났다.

보통 장소와 활동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마기가 지적을 해준다.

예를 들어 욜링 암에서는 가벼운 트래킹을 해야하니 슬리퍼가 아니라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고 말해준다거나,

모래 언덕에 갈 때는 반팔에 반바지를 입는게 편하다고 이야기해준다.

그런데 바양작에서는 그런 거 1도 없어서 스카프나 하나 두르고 슬리퍼 신고 내렸는데,

이상하게 마기가 바람막이를 입더라.

너 나한테 왜 그랬냐.

왜 원피스 입고 슬리퍼 신으면 안되는 거 나한테 비밀로 했냐...

 

바지 안입은 애 처럼 다닐 순 없어서 스카프는 묶어서 치마처럼 만들고, 바람과 맞써 싸우며 바양작으로 올랐다.

스카프로 치마를 만들 때, 마기가 마릴린 먼로냐며 비웃었다.

왜 이런 복장으로 오는데도 아무 말도 안해줬냐고 하니까, 자기가 올 때는 항상 날씨가 좋아서 이럴 줄 몰랐다고 했다.

야무지게 평소에는 입지도 않던 바람막이를 챙겨입고 그렇게 말했다.

유머러스한 친구다.

내가 너한테 Tooth Paste라고 준 그거 사실은 와사비였다는 거, 지금쯤 깨달았을까?

(살려줘...)

 

원래 바양작 자체가 섬이고, 주변은 바다였다고 한다.

바다였을 때도 멋있을 것 같다.

바양작이 고고학자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여기서 발견되는 화석들 때문이라고 한다.

바양작에서 발견된 공룡 화석들 중 아직 두 가지는 다른 어디에서도 발견된 적 없는 새로운 종이라고 한다.

평소같으면 매우 궁금해하거나, 바양작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구경했겠지만 그런 감상에 잠기기도 전에 뺨을 맞았다.

모래 바람에 뺨싸다구를...

그래서 패키지 단체 관광 온 사람들처럼 랜드마크만 찍고 가자는 마음으로 빠르게 움직임.

 

(여기서 나가야해...)

 

바양작 입구에서는 노점이 있고, 귀여운 양과 낙타 인형을 판다.

그런데 암석이나, 옥돌, 그리고 이런 나무돌을 팔기도 한다.

사실 정말 파는 건진 모르겠고, 설령 판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돌을 갖고 귀국할 수는 없다.

 

이건 조금 흥미로웠는데, 나무가 오랜 세월동안 열과 압력을 받으면서 돌처럼 굳어서 돌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처럼 결이 있는데, 단단한 돌이다.

열받으면 나무도 돌이 된다.

 

바양작 입구에서 파는 몽골 지도에 여러가지 돌을 붙여놓은 마그네틱이나, 진짜 양 털로 만든 양 인형이나 이런 것들이 매우 귀엽지만 이미 모래에 너무 많이 맞기도 하고, 모래를 너무 많이 먹기도 해서 홍언니랑 별이가 쇼핑을 하는 동안 프루공으로 돌아왔다.

 

낙타한테는 회초리를 맞고, 바양작에게는 싸대기를 맞았다.

청소년기였으면 분명 삐뚤어졌을 것이다.

 

Day5-3. 여행자 게르 캠프, Again

 

마기에게 텐트에서 자는 게 더 좋다고 말했는데, 별수 없이 하루를 여행자 캠프에서 지내게 됐다.

그래도 충분한 샤워를 할 수 있을거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의 사정도 유목민 게르와 같이 수압이 약하고 차가운 물이 나온다.

이제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그치만 삼일째 머리에서는 모래가 나온다.

 

그래도 이 여행자 캠프는 우리가 처음에 갔던 여행자 캠프보다는 조용하고 깨끗한 편이다.

 

왠지 꽉꽉 채운 이틀동안의 투어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고, 다음 날은 온전히 이동시간에만 써야 한다고 해서 술을 먹기로 했다.

홍언니에게 패기롭게 오늘 보드카 골드를 비우자고 했다.

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며 즐거워했다.

4일동안 수고해준 마기와 감바 아저씨도 동참하기로 했다.

 

(이 땐 몰랐겠지, 이게 얼마나 패기로운 행동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