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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몽골여행기(17.07.29~08.05)

Gobi Tour _ Day3. 여행자 게르 캠프, 하루로 족해.

Day3. 여행자 게르 캠프, 하루로 족해.

 

 

Day3-1. 걱정할 필요 없어!

야생동물의 습격소리는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며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는데, 빗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깼다.

 

예전에 친언니가 누군가와 소개팅을 할 뻔한 적이 있다.

소개팅 상대의 직업이 원룸 주인이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난 그것도 직업이면 자취하는 내 친구들은 다 투잡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동산(=건물)을 갖고 있으면서, 원룸에 세를 받는 20대였다.

그 때, 언니가

"넌 20대가 직업이 원룸 주인이라면 무슨 생각이 들어?"

하고 묻길래,

"글쎄, 그냥 직업이 없는 것 같아. 좋아보이진 않는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언니가,

"그게 네가 평생 노예처럼 일만하면서 살거란 뜻이야."

라고 말했다.

 

친언니 최소 카산드라. (근데 노예 카산드라)

몽골에서도 출근시간에 자동으로 눈 떠지는 노예 여기 있어요.

우리 가이드 마개는 여덟시부터 눈 떠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데, 나는 한국 시간으로 여섯시, 몽골시간으로 다섯시에 눈이 떠졌다.

전날 야영지 뒷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일 출근 안한다!" 를 신나게 외쳤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다섯시에 별이까지 깨워서 여기저기 뒤적거리면서 한두시간 정도 지나서 잠이 들었다.

기상 후 한두시간 후 출근만 하면 집으로 가서 자고 싶어지는 평소의 일상을 잘 반영했다 할 수 있겠다.

성실한 불성실함.

 

너무 소란스럽게 다녔는지, 마개가 일어나서 왜 여기서 자고 있냐고 물어봤는데, 귀찮아서 그냥 눈을 감았다.

다행히 별이가 잘 대답해줬다. 친절한 녀석.

별이랑 마개랑 이야기하는 동안 푹 잤다.

익숙한 별이 목소리랑 마개의 저음을 들으니 잠이 솔솔.

간만에 본능을 따라 게으름을 피웠다.

 

별이는 이 날 아침에 나 때문에 강제 기상해서 마개랑 많이 친해진 듯 하다.

그래서 마개 이름이 사실은 마개가 아니라 마기라고 알려줬다.

아, 미안...

마개가 조금 더 외우기 쉬운 이름이었는데, 나 부르기 쉽자고 만난 지 이틀만에 개명 시킬 수 없으니 은근슬쩍 마ㄱ.. 라고 불렀다.

 

암튼 그 마ㄱ.. 마기가 만들어준 아침을 간단히 먹고나니 마기가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와서 Good News와 Bad News를 전해준다.

Bad news는 게스트하우스 쪽 일정이 꼬였는지, 우리 드라이버 오기와 그의 스타렉스를 건너편 텐트에 있던 감바아저씨와 그의 프루공으로 바꿔야한다고 했다.

Good news는 여전히 가이드는 자기인 거라고.

아하.

아쉽지만 딱히 땡깡 피워서될 일이 아니니, 그냥 알았다고 했다.

오기 아저씨, 안녕. 왠지 투어가 끝날 때 쯤엔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프루공은 악명 높다.

프루공 타고 오프로드를 달리면 허리가 아작난다고.

근데 걱정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걱정해서 달라지는 게 없으니까.

 

Day3-2. 프루공, 너는 예쁜 쓰레기

 

몽골온지 Day3. 투어시작 Day2.

마기는 매우 친절하다.

투어 시작 전에 얼마 정도의 포장도로를 달려서, 얼마 정도의 오프로드를 달릴 건지 미리 이야기해줬다.

그런데 투어 이튿날부터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왜냐면 이제부터 포장도로는 없거등ㅋ

어쩌다 포장도로를 만난다 해도, 프루공의 승차감은 핵별로.

그래도 드라이버인 감바 아저씨는 별이와 나의 회사 동료를 닮아서(같은 회사) 친근했다.

이름도 한번에 외웠다. 감바의 모험에 나오는 감바도 조금 닮으신 것 같다.

이름을 듣자마자, '꼬리를 세워!'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덕후는 나 하나지 뭐.

 

한국에서는 멀미가 매우 심해서, 가끔은 지하철을 탈 때도 멀미를 하고는 했다.

그런데 짐을 야무지게 못 싸서 멀미약 안가져옴.

셋 다 멀미하는데, 셋 다 멀미약 안가져옴.

쓸모도 없는 정로환은 홍언니랑 나랑 둘 다 챙겨옴.

 

그래서 이렇게 달렸다. 저 손잡이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몇번 달리면서 덜컹덜컹 하다보니까 프루공도 타고 다닐만 하다.

우리가 타고 다닐만해지니, 마기가 몽골 영상을 몇개 보여줬다.

몽골 나담 축제에 관한 영상(https://youtu.be/8iAmUilpTyc)

그리고 러시아, 중국, 카자흐스탄 등에 떨어져있는 몽골인을 하나로 묶어주는 노래라고 들려준 게 있는데 지금 찾으니까 찾을 수가 없다.

흥미롭긴 한데, 흔들리는 차 안에서는 볼 수 없어서 잠에 들었다.

스타렉스였으면 끝까지 봤을거야. 미안.

우리가 나쁜게 아니야. 프루공이 나빠.

 

자고 일어나니, 점심시간!

매일 매일이 이랬으면 좋겠어.

심지어 밥도 해줘.

마기가 밥하는 동안 홍언니랑 나는 술도 마셔!

 

사진을 찍고보니, 프루공이 운치있어 보인다.

장점만 가진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단점만 있는 차도 없는 법이다.

사진을 찍으면 찍는 족족 잘나오긴 한다. 정말.

 

 

 

Day3-3. 몽골화장실이 최고야.

 

보통 가이드가 음식을 하는 동안 운전기사는 차를 닦거나 정비한다.

감바 아저씨는 매우 깔끔한 분이셔서, 우리 캐리어를 내릴 때도 담요를 꼭 깔고 내리고, 비가 오면 위에 돗자리도 덮어주셨다.

오프로드를 한참 달린 차보다 우리가 더 더러워서 아저씨한테 미안할 정도...

 

마기가 밥을 준비하는 동안 홍언니랑 나는 맥주를 비우고, 음악을 들었다.

아이폰으로 음악을 틀어놓으니까, 마기가 소중한 닥터드레 스피커를 빌려줬다.

 

마기는 우리가 도와주기도 전에 이런 저런 요리의 기본 준비는 다 끝내놓을 정도로 요리를 잘했다.

이 날 자주색 곡물을 섞어서 밥을 해줬는데, 저게 진짜 맛있었다.

봉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찍어놨다가, 나중에 국영백화점에서 사서 가져왔다. 

몽골에서는 밥을 요리할 때마다, 기름이랑 소금을 조금씩 넣고 한다.

그래서 밥 자체도 간이 되어있는데, 같이 곁들인 음식도 간이 조금 센 편이라서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

 

 

이런 평원에 내려주면, 언제 다시 차를 세울지 모르니까 화장실에 가는 편이다.

아니나 다를까, 맥주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밥까지 먹고 신나서 별이랑 언니랑 화장실에 갔다.

물론 자연의 화장실.

 

이 때부터였다. 우산이 값어치를 하기 시작한게.

 

이전에는 돌이나 벽, 풀등의 지형지물을 이용했는데, 여기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홍언니랑 나는 맥주를 두어캔 끝내고 살짝 기분 좋은 상태였고, 별이는 굳이 술을 안마셔도 기분이 좋다.

그래서 우산하나를 펴놓고, 앞에 두 사람이 노래를 부르다가 신나서 춤도 추면서 일을 봤다.

 

요즘 휴게소에 괜찮은 공중 화장실에는 향기도 나고, 음악도 나온다고 하는데

몽골 화장실도 괜찮다. 바람도 잘 통하고, 노래도 할 수 있다(?)

 

 

Day3-4. 난 염소보다 못해

 

오프로드를 끝없이 달려 도착한 곳은 여행자 게르 캠프이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Yollin Am을 가는게 맞지만, 날이 너무 어두워져서 내일 이동하는게 좋겠다고 하길래 그러자고 했다.

유목민 게르와는 달리 게르 캠프는 여행자들이 묵어가도록 게르를 운영하는 곳이다.

요렇게 생긴 게르들이 여러개 있음.

 

게르로 만든 여관이나 모텔 정도를 생각하면 될 듯.

근데, 이 게르 캠프가 정말 한국인 엠티촌이다.

대학생 시절 우이동 엠티촌에 갔던 기억이 난다.

대신 여기서는 핫샤워를 할 수 있었고, 현대식 화장실도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청소를 매우 깨끗하게 하셔서, 화장실에 벌레도 없고 냄새도 안나고 꽤 깨끗한 상태로 유지되는 곳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는데, 핫샤워를 하고 돌아오니 마기가 그새 밥을 만들어줬다.

비가 오니 국물이 필요할 것 같다고, 양고기가 들어간 칼국수를 해줬다.

나중에 책으로 보니, 양고기 칼국수 몽골에서 매우 유명한 음식인 것 같다.

비랑 음식도 잘 어울리고, 간만에 샤워도 해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현대식 화장실도 있으니 한번 해결해볼까 했다.

한국에서는 아침식사는 거르고, 점심과 저녁을 먹는데 몽골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 사이사이에 간식까지 챙겨 먹었다.

아니 마기가 챙겨 먹였다.

그래서 한국보다 Input은 많아졌는데, 사실 Output이 없었다.

자가진단하기로는, 자연의 화장실이 아직 심리적으로 익숙치 않아서 장이 낯가리나보다 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비가 아님을 증명하려면 현대식 화장실이 있는 이 곳에서는 꼭 응가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마음 단단히 먹고 가서, 절반의 성공을 했다.

전날 바가 가즈로 츌루에서 마기가 길에 놓여진 응가를 보고, 염소의 응가인지, 낙타의 응가인지 알려줬다.

절반의 성공에서 나는 염소보다도 못한 닝겐이었다.

 

별이가 나한테 내 장은 재공버퍼(Work in Process, 공정 중 재고)가 크다고 했다.

린 프로덕션에서 재공 버퍼는 낭비이고, 망하는 지름길이다.

망함.

 

간밤에 잠못 이루고 다섯번도 넘게 시도했는데, 흘러간건 시간과, 변기물 뿐.

 

마기가 밥을 갖다주고서, 자기는 하우스#5에서 감바아저씨와 같이 먹을테니 다 먹으면 하우스#5로 냄비와 그릇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래서 화장실 가는 길에 게르#5에 가져다줬는데, 아무도 없길래 두고 나왔다.

그리고 염소보다도 못한 닝겐과 닝겐다운 닝겐 둘이 게르에서 쉬고 있었는데, 하나둘씩 벌레가 눈에 띈다.

세끼손가락 반마디 만한 풍뎅이같은 검은 벌레 여러마리가 바닥이랑 침대를 기어다니고 있고,

갈색 점박이 같은 메뚜기 두어마리가 이렇게 생긴 게르 지붕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니, 전등 불을 따라 들어온 것 같았다.

벌레를 볼 수는 있지만 잡을 수는 없고, 싫어하지만 죽일 수는 없는 셋 모두 멘붕.

 

때마침 마기가 아직 밥을 다 안먹었냐며 들어왔다.

그리고는, 손으로 벌레를 몇마리 잡아서 밖으로 놔줬다.

홍언니가 가져온 미니전기 파리채를 건내줬는데, 작은 생물을 해하기 싫다고, 손으로 잡아서 밖으로 놓아줬다.

미안하지만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

 

마기가 말한 하우스 #5는 집처럼 생긴 건물이었기 때문에 다같이 주인 없는 게르#5를 가서 그릇을 찾아왔다.

그릇을 하우스 #5까지 같이 배달해주면서 하우스 내부를 구경했는데, 화장실도 딸리고 벌레도 없었다.

왜 게르에서 안 자고 여기서 자냐고 물어보니까, 그냥 주인이 거기를 줬다고 했다.

아, 나도 게르에서 안 잘 자신 있는데...

아무 짓도 안하고 잠만 잘테니까 바닥에서라도 재워달라고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다시 게르로 돌아왔다.

게르로 돌아와보니, 샤워하고 와서 널어둔 빨간 빤쮸가 널려져있었다. 분명 봤겠지.

이런 빤쮸를 자랑스럽게 널어놓는 여자가 벌레를 무서워한다니 조금 웃겼을 것 같긴 하다.

 

3-5. 소주 한 잔은 코인 노래방 가서 혼자 불러줘.

 

이 여행자 캠프에는 한국인이 엄청 많았고, 엄청 시끄러운 한국인이 많았다.

새벽 두시가 되도록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는 한국인 두 무리가 있었다.

나는 염소보다 못했기 때문에 신경이 매우 예민해져있었고,

홍언니는 까만 벌레들 때문에 곤두서 있었고,

별이는 갑자기 예민해져 잠못들고 돌아다니는 우리 때문에 곤히 자다가 몇번이나 깼다.

 

그런 상태에서 술 마시고, 임창정의 소주 한 잔을 부르는 한국인 무리라니.

여자친구 데리고 노래방에서 고해 부르는 것보다 더 나빠.

그건 여자친구만 기분 나쁘게 하지만, 이건 모두를 기분 나쁘게 하잖아.

 

벌레랑 고성방가 때문에 잠도 안오고 해서, 그냥 귤을 까먹으면서 밖에서 E-book을 봤다.

언니도 핸드폰으로 미리 받아놓은 여행 페이지를 읽었다.

애석하게도 별도 안보였다.

 

게르에 대한 환상 와장창!

 

 

 

 

* 다 쓰고 보니 별이 너무나도 극한 여행... 아침에는 나 노예 때문에 강제기상, 밤에는 홍언니랑 나 때문에 강제 불면... 별아, 미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