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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ler/국내여행기

[순천_170822] 프로 위여머의 순천만 여행

1.순천: 프로 위여머의 순천만 여행

1-1. 도비는 자유로운 집요정이에요.

 

회사가 쉰다. 모처럼.

노조창립일이다. 좋은회사다.

노조가 만들어졌는데, 휴일이다.

이로써 분명해졌다. 모든 노동자는 쉬기를 원한다.

 

사실은 전날 쓰레기처럼 술을 먹고 휴일 하루를 숙취의 날로 지정하려했는데, 약속 상대들의 일과 병으로 파투가 났다.

그리고 나도 위염.

금요일 밤부터 먹는 족족 화장실에서 고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쏟아냈는데, 누가 이기나 하는 마음으로 끼니마다 맥주를 마셨다.

물론 내가 짐ㅋ

그래서 간만에 알콜 프리로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중국어와 러시아어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불현듯 국내 기차여행을 찾아보게됐다.

공부하려고 맘만 먹으면 이렇게 공부 외적인 재미난 일들이 생각난다.

욕구와 의지는 항상 반대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에 재밌는 걸 하고 싶으면 하기 싫은 걸 하려고 마음 먹으면 된다.

 

사실 안동에 가려고 했다.

안동과 순천에는 슬픈 전설이 있다.

 

대학교 때 내일로가 엄청 흥했다. 내일로 대부흥기.

그 때 친한 친구 주디랑 같이 내일로를 갔다.

제대로 타본 대중교통이라고는 지하철이랑 버스밖에 없었던 우리는, 기차가 그렇게 간헐적으로 다니는 건줄도 모르고 우리가 패기있게 짰던 여행계획이 대충 이런식이었다.

전주 - 곡성 - 순천 - 경주 - 의성 - 안동 - 정읍 (5일짜리 였음, 근데 정읍 빼고 다 감ㅋ)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패기.

 

전주를 돌고 늦은 저녁 곡성에 도착했을 때, 불빛하나 없는 황량하고 무서운 기차 마을을 보고 바로 순천인가 경주로 갔던 기억이...

베오그릴스가 와도 안되는 저 무의미한 계획에서 더 우릴 어이없게 했던 건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이었다.

우리가 순천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볼라벤도 순천에 도착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관광지들과 핫한 식당들이 문을 닫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퍼질러 있었는데,

게스트하우스도 청소시간이라고 나가라고 하길래 어쩔 수 없이 나갔다.

갈 데가 마땅치 않아 근처 마트에 가려는데 카페 창문 깨지고,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날아갈 뻔...

결국 메가박스에 도착해서 영화 이웃사람을 보고, 애슐리에서 저녁을 먹는 걸로...

그 때 겪었던 순천이라고는 순천역 앞 간장게장.

그리고 나서 안동으로 이동했을 때도 비가 왔다.

흙길로 된 하회마을을 태풍 덴빈과 함께 걸었다.

웬만한 태풍이름은 그냥 넘어가는데, 볼라벤과 덴빈은 잊을 수 없다. 1여행 2태풍.

순천은 그 이후로 두어번 더 갔는데, 안동은 도무지 갈 기회가 없어서 안동에 가려고 했는데 기차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체력으로 보나 순천이 더 편할 것 같아서 게으른 직장인은 순천을 가기로 정했다. 전날 밤 열한시에.

그리고 준비물을 챙김.

쓴거: 칫솔&치약, eBook, 노트, 펜, 파우치, 지갑, 배터리, 셀카봉(1회), 망원경(1회)

안쓴거: 모자, 정로환(위여머의 지나친 걱정), 파이리, 부채, 선글라스

 

기차는 8시 54분 걸 예약해놓고, 새벽 1시 반까지 저딴 준비물을 챙기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지만 도비는 부지런한 집요정이에요.

도비는 아침 7시 전에 눈을 뜨죠. (물론 피곤함)

노조가 창립되어도 막을수 없는 노예 근성

 

사실 순천은 태풍을 몰고 다니는 주디와 한번, 대학교 동창들이랑 한번, 대학원 동창이랑 한번 가봤다.

태풍 때를 빼고는 두번 다 순천만을 갔었다.

한참 정원 박람회 열었을 때 가서 열심히 보고 왔었고, 순천만 용산 전망대도 올라갔다 왔다.

심지어 세번 중에 두번은 점심 저녁 메뉴가 같았음.

하지만 난 또 같은 곳에 가지. 한놈만 조진다......가 아니라,

애초에 이번 여행에서 정한 키워드가 혼밥, 위염, 전망이라서 위염에 걸린 여행자가 순천만에 가서 전망을 보고 혼밥 가능한 식당에서 밥 먹고 돌아오는게 목표(소박)

 

 

8-1. 많은 사람들이 놀고 있었다. 나 빼고.

 

기차에 사람 별로 없겠지. 화요일에 노는 건 나 혼자니까, 히히. 하는 생각으로 갔다.

야무지게 출근하는 친구들을 놀려가면서.

아, 근데 대학생들 내일로 시즌.

아. 나만 노는 줄 알았는데, 실망.

나는 내일 안 노는데 걔들은 내일도 놀아서 더 실망.

대학교 학기당 교과과정 25주로 바뀌었으면. 쿼터제 시행했으면.

비싼 등록금 내고 16주 너무 짧은 거 아닙니까...

 

그렇게 대학생이 많은 와중에 기차 옆자리는 아저씨가 앉았다.

곤히 주무시고 계셨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어나서 가방을 뒤지시더니 영수증을 한장씩 확인해서 찢어서 버리시더라.

그 아저씨 정말 한장씩 한시간동안 영수증만 찢으셨다.

그 많은 영수증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직 나는 멀었다. 이렇게 돈을 낭비하면서 사는데 우연히 기차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한테 영수증 개수에서 밀렸다.

영찢남의 영수증 찢는 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었는데, 기내가 너무 추워서 이빨을 부딪히면서 잤다.

 

열차가 신기한게, 1~4호차는 여수행이고, 뒷칸은 광주행이라서 익산쯤 가서 열차 분리하는 시간을 갖더라.

아저씨는 영수증을 찢고 코레일은 기차를 찢었당.

그렇게 도착한 순천역은 사람이 겁내 많았다.

나도 내일로 가고 싶다.

근데 비 옴ㅋ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정도의 준비성은 없었다.

계획이라고는 저딴 준비물을 갖고 순천만에 갔다가 혼밥을 해야지...정도.

그래서 당연히 우산도 없음.

하지만 나는 뉴요커 같은 대저너. 이 정도 비는 쿨하게 맞아야지.

시원하게 쏟아붓는 비는 아니고, 애초에 점심을 먹을 식당은 순천역 100m 이내 거리에 있어서 걸었다.

 

오늘 일할 것 같은 친구들에게 '난 오늘 출근 안한다, 수고들 해라' 라며 광역도발을 시전했는데, 그 중에 주디도 있었다.

사실 주디는 출근시간이 일정치는 않아서 도발이라기보다는 그냥 순천 간다고 연락을 했는데, 시대식당에 꼭 가라고 했다.

주디도 볼라벤과의 순천 이후로 따로 순천에 가서 시대식당을 가서 간장게장 사진을 찍어 보냈었고,

나도 이후에 또 시대식당에 가서 간장게장 사진을 찍어 보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계획.

그게 아니라도 선택지가 넓지 않았던게 대부분의 간장게장/꼬막 정식이 1인분이 잘 안된다. 1인분이 2인분 이상이랑 가격차이가 있어서 굳이 안먹게 되는데, 여기는 1인분이 된다. 가격 차이는 꽃게냐, 돌게냐의 차이.

 

2011년인가 12년에 왔을 때는 꽃게냐 돌게냐의 차이는 없었고 간장게장정식만 있었다.

2013년에도 간장게장정식만 있었고, 생선구이백반이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기왕에 온 거 꽃게 간장게장백반을 시킴.

(간장게장은 둘째치고, 국이 맛있음.)

 

 

 

원래 밥먹을 때 사진 찍는 거 까먹기도 하고,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잘 안찍는데

직장인 친구들 놀리려고 많이 찍었다.

 

예전에 왔을 때는 짠맛보다는 약간 덜 짜고 달달한 맛에 먹었는데, 이번에는 간이 좀 세져서 별로...

라기엔 다 먹음.

위염이 뭐죠?

기가 막힌 맛집은 아닌데, 역 근처라서 내일로 중인 대학생들이 많이 오더라.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비가 그치고 습하고 더운 날씨가 됐다.

겁나 짜증나는 날씨가.

그치만 괜찮아, 짜증낼 상대가 없으니까!

 

 

1-3. 신장은 두 개니까, 하나 정돈 괜찮아.

 

순조롭게 지구대 건너편에서 67번 버스 탑승.

밥을 맛있게 먹었지만 어디까지나 위여머이기 때문에 위여머의 필수품, 포카리와 맛밤도 하나씩 샀다.

비여머의 필수품인 휴지도 샀다. (하지만 이 휴지는 향후 땀을 닦는데만 쓰게 됩니다.)

순천만 네 번째 방문이라, 순천만에 찾아가는 건 껌이다.

(순천역 67번 정류장에서 바라본 역 앞 로터리)

 

 

그때부터였을까요, 제가 껌을 못 씹게 된게...

 

방송을 잘못 듣고, 벨을 눌러버림.

뭐라고 변명하기 애매해서 내려버림.

그리고 발견한,

 

작년 여름에 뛰었던 5km 마라톤 기록이 37분 14초였다.

걸으면 1시간 이상이 걸린다는 건데, 어차피 시간이 많으니 슬슬 걸으면서 주변이나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걷기로 함.

한 십분도 안 걸었는데 4km가 남았다길래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걸었는데,

저 표지판이 마지막이었음.

직선거리 4km를 말한 모양.

실제 길은 굽이 굽이 가게 되어있다.

 

근데 재밌는 구경을 많이 하면서 걸어서 표지판이 있단 사실을 까먹었다.

걱정이 될 때 쯤에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가 나타나서 근처에 순천만 습지가 있겠거니, 하고 걸었다.

가는 길에 구경할 거리도 많았다.

그냥 관광지로만 인식하고 있는 장소인데, 평범한 길을 걸으니까 사람 사는 냄새도 나고 좋더라.

(60 70 도깨비 마을이라고 조성해놓은 미니 공원인데, 예쁘긴 하지만 60대도, 60년생도 아니라 자격박탈...)

(홍두 내동이라서 홍내마을이다. 뭔가 트렌디한 작명)

 

알록달록하고 작은 초등학굔데, 이름이 도사초등학교다(근엄)

 

(여기 있는게 어색하기만 한 교통공원)

 

(하바드 치킨집)

 

(자조, 자립, 협동)

 

(비온 뒤라서 너무 정직한 흙탕물)

 


(빅스니...?)

(박쥐랑 거미...)

 

이쯤 왔을 때, 매우 지쳐있었는데, 건너편에 있는 스타렉스 차량에서

"어디까지 가세요?"

하고 물어보길래,

"순천만 갑니다"

하니까,

농협 직원인데, 순천만까지 가야하니까 태워다주시겠다고 한다.

그래서 고맙다고 냉큼 탔다.

그렇게 의도치 않은 히치하이킹을... 혼자...

스타렉스 승합차+낯선 이의 조합은 타서는 안되는데, 몽골에서부터 장기의 소중함을 자꾸 잊는 것 같다.

신장은 두개니까 하나쯤은....

타고 나서 스타렉스의 빵빵한 에어컨에 사고회로가 정지해서 경계심 1도 없이 이야기 나눔.

 

다행히 정말 호의를 가진 농협 직원이셨다.

5분 정도 거리였는데, 이야기 나눠보니 거진 동향 사람이고, 농협에서 청원경찰로 일하는 24세 청년이었다.

순천만에는 농협 ATM기가 있어서 가는 길이었고, 주차장에서도 청년을 아는지 그냥 반갑게 인사하고 열어주더라.

경계심 1도 없는 바보가 운 하나는 좋아서 시원한 에어컨 쐬면서 금방 도착했다.

고맙다하고 내리고 보니까, 가방 안에 있던 맛밤이라도 줄걸 후회가되는데 나는 너무 쿨하게 내려버렸고, 그분은 너무 쿨하게 떠나버렸다.

선의의 순천 시민, 고맙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꼭 맛밤 줄게요.

 

 

1-4. 명상의 길 ㄴㄴ 무상의 길.

 

순천시민의 도움으로 드디어 순천만 습지에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내일로도 못하는 나이든 외지 성인 8,000원 결제.

다소 비싸지만 이걸로 순천만 정원도 입장할 수 있다고 한다.

휴일이 하루밖에 없는 도비에게는 소용이 없어요.

그치만 친절하게 현금영수증은 해주신다.

연말에 삥 뜯기기 싫다면, 현금영수증을 하도록 하자.

습지 가기 전에는 이런 저런 것들을 선택할 수 있다.

순천 문학관/낭트정원, 순천만 탐조대 등등 갈래길이 있지만 오늘은 원형 갈대군락을 보러 용산 전망대에 오기로 마음 먹었다.

목적지는 애초에 순천이 아니라 순천만 용산 전망대니까.

 

순천만에 올 때마다 배를 타고 돌아다니는 게 궁금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선착장에 가봤는데, 모두 결항.

아무래도 사람이 워낙 없어서 그런 것 같다.

씩씩하게 용산 전망대에 오르기로.

들어가기 전부터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주변에 큰 건물은 없고, 산과 물과 갈대가 있어 편안한 기분이 든다.

뻘이기 때문에 물이 탁회색인데도, 답답한 마음은 없음.

(갈대길 ㄴㄴ 갈때길ㅇㅇ)

순천만 습지는 들어가는 방향이랑 나오는 방향이 확실히 나누어져 있어서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사람과 부딪힐 일이 적다.

게다가 나는 모두가 일하는 평일 낮 햇빛이 가장 뜨거울 시간을 선택했기 때문에 사람이 없어서 평소의 순천만에서는 찍을수 없는 이런 사진도 찍었다.

(쉼터마다 모양이 다르다. 어떤 쉼터는 짱뚱어랑 게를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성수기의 순천만에서는 절대 찍을 수 없는 사진)

 

갈대길을 걸을 때 관전 포인트는 크게 두가지이다.

 

이런 초록 풍경이거나, (가을 겨울에는 흔히들 아는 베이지색 갈대로 나름 운치가 있다.)

 

 

바닥에서 튀어다니는 짱둥어나, 게 구경.

돌아오는 길에 보면 표지판에 게에 대한 설명이 있다.

다 똑같은 게인줄 알았는데 붉은발말똥게, 칠게, 털게 뭐 다양하게 있다.

다 똑같은 아이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마음으로 낳은 내 새끼가 있는 뭐 그런거다.

사실 갈대밭에서는 크게 힘빼지 않는게 좋다.

오히려 용산 전망대에서 내려와서 슬슬 걸어가면서 갈대밭이나 게를 보는게 좋다.

왜냐면 갈대밭이 끝날 때쯤부터 헬게이트가 열리니까.

 

가당치도 않게 이런 건방진 선택지를 준다.

가학적인 성향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뭘 선택할지는 뻔하다.

굳이 표지판이 아니라도, 오른쪽을 보면 끝도없는 계단이 펼쳐져있다.

 

 

근데 명상의 길이라고 했지, 다리 안아픈 길이라곤 안했다.

점심 전까지 비가 쏟아지다가 햇빛이 쨍쨍 비치기 시작했는데, 습한 공기가 무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땀이 비오듯 흐름.

위여머의 아이템 포카리와, 비여머의 아이템 휴대용 티슈는 그냥 등산러의 아이템이었다.

 

(성수. 스테미너 포션. 동아오츠카 임직원 아님.)

 

웃긴게 뭐냐면. 순천만의 표지판은 친절한 듯 친절하지 않은게 나의 응가 사정은 겁나 챙겨주는데, 갈증은 안중에도 없다.

화장실이 없다고 길에다 응가를 싸지르진 않는다구욧.

순천만에 들어가기 전 꼭 편의점을 들러서 이온음료를 사야한다.

용산 전망대까지 꾹 참고 올라가도 자판기 같은 건 없다. 목마르면 침 삼키던가.

(엽서 자판기는 있다.)

 

(화장실 갈 생각이 없는데 화장실 안내는 난리에 난리.)

 

 

명상의 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일단 날씨가 헬이고, 오르막길이 헬이다.

중간에 가다가 너무 빡치는게, 내리막길이 있다.

어차피 내려갈거면 왜 올라오라고 했는데요.

 

그래도 중간에 쉬어갈 길이 있고, 사이사이로 풍경이 보여서 전망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약간 희망고문 같은 거.

쉬어가는 곳에서 셀카를 찍어서 일하고 있는 직장인들을 약올리면 힘이 솟는다.

"땀이 너무 난다, 사무실에 있었으면 안났을텐데. 부럽다, 노예들아."

 

 

일하는 노예들 놀리는 거 말고는 되도록이면 별 생각 없이 걷는게 좋다.

원래 힘든 건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꼭대기에 도착한다.

중간에 전망대인척 하는 구조물이 있다. 속지말자. 거긴 아니야.

 

용산 전망대에 올라오면 눈 앞으로 원형 갈대군락, 철새 서식지, 순천 저 끝까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런 장면에서는 꼭 파노라마를 찍어야 한다.

사무실에서 윈도우의 텔레토비 동산을 보고있을 직장인들을 위해서.

 

 

작은 산이긴 하지만 나름 정상이라고 바람도 솔솔 불면 시원하다.

비록 음료 자판기는 없지만 엽서 자판기가 있다.

순천만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이 있는 엽서가 6~7가지 정도 있는데 500원이면 뽑을 수 있다.

종종 자판기 구조상 얘들이 나오다가 걸릴 때가 있는데, 그러면 포기하지 말고 옆구리를 흔들어주면 된다.

 

두꺼운 주소집도 있고, 펜도 있어서 여기서 직접 써서 순천만 철새 마스코트가 들고있는 Post box에 넣으면 된다.

애초에 엽서와 우표가 일체형이기 때문에 바로 써서 넣으면 된다.

 

(눈도 초롱초롱하니 나름 귀여운 편이다.)

 

왠지 멋진 풍경에 최근 몽골 여행을 같이 했던 홍언니, 별이, 마기가 생각나서 그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엽서는 국내용이기 때문에 마기에게 보내는 건 나중에 우체국에서 별도로 보내려고 가져왔지만.

 

엽서를 보낸 목적은 내가 보는 이 멋진 풍경을 원래 같이 보던 님들과 나누고 싶어요. 였는데,

엽서 고르는 실력이 똥눈 똥손이라서, 지금 보고있는 풍경과 매우 상반된 일몰/핑크색/저녁 이런 걸 보냈다.

(저 핑크는 뭔지 정말 궁금)

용서해줘. 진정 내가 본 풍경은 위에 사진보고 공유합시다.

 

사람이 워낙 없을 때 와서, 여기 올라오신 어르신들과도 몇마디 나눌 수 있었다.

원래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걸 불편해하는데, 혼자서 입에 단내나게 여기까지 올라오니까, 몇마디 나누는게 괜찮다.

 

1-5. 건봉국밥과 나누우리 막걸리의 위엄, 그리고 위염

 

내려오는 길은 금방이다.

용산 전망대를 갈 거라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빠르게 갈대밭을 빠져나왔다.

갈대밭을 빠져나오면 보이는 순천만 쉼터에 카페가 있는데, 위염임을 잠시 잊고 차가운 오미자차를 시켰다.

그리고 휴대폰을 충전하면서 빠르게 마심.

얼음도 씹어먹음.

인간은 어리석고,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기어코 모든 것을 쏟아낸 것은 다음날 새벽이었기 때문에 당시에는 한치앞도 모른채 신나게 휴대폰과 체력을 충전하고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랫장으로 출발.

버스를 타도 되는데 내 앞에 일행이 택시를 탔기 때문에 나도 택시를 탐. 질 수 없다.

 

건봉국밥은 12년인가, 13년에 한번 왔었는데 나름 괜찮았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와보니 외관도 바뀌고 깔끔해지고, 넓어졌다.

예전엔 그냥 시장 국밥집이었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오늘은 장날이라서 길이 조금 막힌다고 했다.

매월 2일 7일 12일 17일 이런식으로 열리는 오일장인 것 같다.

그렇게 많이 막히진 않았고, 택시비 6,900원.

 

국밥은 거의 7,000원이고 순대만, 머리만 등등으로 선택할 수 있다.

순대국밥집에 가면 순대만 주세요, 내장만 주세요. 하는 주문들을 메뉴화시킨 듯 하다.

취향은 콩나물 국밥인데, 시그니처 메뉴를 먹어야 할 것 같아서 국밥을 시켰다.

그리고 약간 심심한듯 하여 나누우리 막걸리를 시켰다.

맥주를 먹을까 했는데 냉장고 사정을 보아하니 맥주가 카스밖에 없길래, 제일 생소한 나누우리를 시킴.

국밥집인지라 혼밥러들이 많다.

원래도 혼밥할 때 눈치는 안보지만 아재메뉴인 막걸리+국밥 조합에도 별 눈치 안보고시킬 수 있었다.

 

나누우리 막걸리는 여타 막걸리들보다 탄산이 세고, 단맛이 있고, 쓴맛이 별로 없다.

장수막걸리+사이다 조합 같은 맛.

완 1병 하진 않았지만, 메모에 나누우리 막걸리 개존맛 톡쏘는맛 단맛이라고 적어 놓은 걸 보니 꽤 맛있었던 것 같다.

순천에 양조장이 있다고 한다. 순천스러운 막걸리니까 갈 때마다 먹어야겠다.

 

국밥은 여전히 국물이 맛있고, 짜다.

순천 올 때마다 가는 식당(몇 개 안되지만)은 모두 간이 좀 센 편이다.

다대기가 올려져서 오는데,어느정도 덜어내고 간을 맞추는 게 좋을 것 같다.

별 생각없이 다 섞었다가 짜서 막걸리 많이 마심.

술이 땡겨서가 아니라, 국밥이 짜서...

 

리빙포인트: 막걸리가 많이 마시고 싶으면 다대기를 섞어서 좋은 변명거리를 만들도록 하자.

 

위여머는 위여머인데, 운이 좋은 위여머인지라 저 모든 것을 먹고도 쏟아낸 것은 당일이 아니라 다음날 아침이었다.

다행다행.

 

1-6. 쓸데없는 건 챙기지 말고 티셔츠나 한장 더...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고, 기차 타서도 세시간은 가야하기 때문에 킬링 타임 해야한다.

순천역 앞에는 드롭탑과 이디야가 있다.

최근 두번의 순천 방문에서는 드롭탑에서 보냈는데, 이번엔 이디야로 정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인게 이디야가 넓기도 하고 자리마다 콘센트가 있다.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의 해피타임을 위해 핸드폰과 보조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위여머이기 때문에 따뜻한 티를 시켰다.

순천만에서 홍언니에게 보낸 엽서에 기숙사 홋수를 적지 않았기 때문에, 혹시 안갈까 싶어 하나 더 가져와서 썼다.

여행기로 적을 글도 정리했다.

근데 적은게 이딴식이다.

...

 위여머의 멋진 포카리 다마심

 위여머의 멋진 오미자차 다마심

 위여머의 멋진 건봉국밥&나누우리 막걸리

 이디야 얼그레이 위여머.

과거의 나에게 저딴 똥글을 받아놓고도 이런 기나긴 여행기를 쓰는 현재의 나, 대견하다.

근데 저걸 쓰는 동안 땀냄새가 너무도 심하게 났다.

전날 챙긴 준비물의 절반은 가방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다른 거 챙길 시간에 티셔츠를 하나 더 챙겨서 집에 가기 전에 갈아입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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